초자연적 현상은 환각에 불과한가? 자연법칙은 영원불변한 것인가? 물질은 의식이 없는가? 정신은 뇌 안에 얽매여 있는가?
영국의 과학철학자 루퍼트 셸드레이크는 저서 '과학의 망상'을 통해 과학의 발목을 잡고 있는 주요 10가지 도그마를 설득력 있게 검증한다.
현대 과학이 영원불변하다고 믿는 열 가지 확신을 의문으로 바꿈으로써 우리의 고정된 생각과 유물론적 세계관에 대한 통념을 깨뜨린다.
형태공명이라는 혁신적 이론으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 이 책은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이후 현대 과학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 과학은 모든 현실이 물질적이거나 물리적이라는 주장에 근거한다. 물질적 현실을 제외한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도 뇌의 물리적 활동이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물질은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진화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신은 단지 사람들의 정신, 그러니까 머릿속에 깃든 한낱 생각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런 믿음들이 강력한 힘
을 가지는 것은 대부분의 과학자가 이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이 밝혀낸 '사실'들은 의심할 바 없는 실재다.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기법들 또한 그러하며, 이 기법들에 근거한 공학 역시 그렇다. 하지만 전통적인 과학적 사고를 지배하는 신념 체계는 19세기에 구축된 이념에 근거한, 신앙과도 같은 행위일 뿐이다. (13쪽)
셸드레이크는 유물론과 기계적 과학으로 대변되는 현대 과학의 문제점을 독자 스스로 깨닫고, 보다 자유로운 탐구정신을 갖출 수 있도록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사상의 변천과정과 문제들, 주요 사상가들의 과학철학 흐름과 쟁점을 한눈에 파악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에서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니체, 아인슈타인, 리처드 도킨스를 아우르는 주요 사상가들의 과학철학 쟁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며, 유물론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주류 과학자들과 오랜 시간 첨예하게 부딪친 주요한 논쟁의 쟁점들을 살펴본다. 특히 리처드 도킨스처럼 현대 과학의 슈퍼스타와 다름없는 이들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비판하며 균형 잡힌 과학적 지식을 제시하도록 돕는 셸드레이크의 '형태공명' 이론에 주목할 만하다.
"자연의 체계들은 이전에 존재했던 자신들의 모든 종으로부터 집단기억을 물려받는다"는 그의 형태공명 가설은 발생,유전, 기억과 같은 생물학의 보편적 주제뿐 아니라 예지, 텔레파시, 영적 응시효과 같은 초자연적 주제들까지 아우르며 기존의 과학이 부정하고 도외시한 주요 질문에 새로운 답변을 제시했다.
형태공명은 문화적 유전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형태공명을 통해 동물과 식물들은 그들의 이전 세대들과 연결된다. 이들 개개인은 그들 종의 총체적 기억을 활용하며, 동시에 거기에 기여한다. 동물과 식물들은 자신의 종과 품종의 습성을 물려받는다. 이 방식은 인류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유전에 대한 이해의 확장은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 앞선 세대들로부터의 영향,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들에게 우리가 미치게 될 영향들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꿔놓을 것이다. (252쪽)
철학자 마틴 고헨은 셸드레이크가 "정통과학의 확실성에 구멍을 뚫음으로써 철학적 논쟁만이 아니라 과학적 논쟁에도 귀중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했다.
유물론에 반박하는 셸드레이크의 핵심 메시지
자연은 기계적인가?
기계론은 기계라는 은유를 바탕에 깔고 있다. 기계론의 가장 열렬한 신봉자조차 목적에 부합하는 조직 원리를 살아있는 유기체에다 이기적 유전자나 유전적 프로그램의 형태로 주입시킨다. 우주 대폭발 이론을 감안했을 때도 전체 우주는 기력이 점점 쇠퇴해가는 기계이기보다는 성장하고 진화하는 유기체에 더욱 가깝다.
자연법칙들은 영원불변한 것인가?
자연의 법칙들은 스스로 진화하거나, 어쩌면 습성에 더 가까울는지도 모른다. 또한 ‘기본상수’는 다양하게 변할 수도 있으며, 그들의 값은 우주 대폭발의 순간에 고정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상수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변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에는 내재된 기억이 존재하며, 모든 유기체들은 자신의 종의 집단적 기억에 참여할 수도 있다.
자연은 목적이 없는가?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는 목표 지향적인 성장과 행동을 보여준다. 성장하는 식물과 동물은 성장의 목적들로 이끌려가며, 만약 성장이 방해를 받는다면 다른 경로를 통해 동일한 목적을 성취할 수도 있
다. 인류에게 있어서도 대부분의 목적과 목표들은 습관적이다. 의식적인 목적들은 원칙이기보다는 예외에 속한다. 진화와 발전은 모두 영향력이 미래의 목적으로부터 시간을 거슬러 과거와 현재로 작용하는 인자의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생물학적 유전은 모두 물질적인가?
발생과 행동의 유전은 고유의 기억을 갖고 있는 조직의 장에 의해 결정될지도 모른다. 성장과 행동의 습성은 종의 집단기억을 통해 이전될 수 있는데, 각각의 개체들은 이 기억으로부터 자신들의 특성을 끌어내기도 하고, 또한 기억의 형성에 기여하기도 한다. 유기체들은 유전자 내에 암호화되어 있지 않은 형태와 행동의 습성을 형태공명 과정을 통해 물려받는다.
기억은 물질적 흔적으로 저장되는 것일까?
기억의 흔적들을 추적하는 데 있어 거듭된 실패는 오히려 기억을 공명 현상으로 보는 생각을 뒷받침해준다. 공명 현상은 과거에 있었던 유사한 패턴들의 활동이 정신과 뇌에서 일어나는 현재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개개인의 기억과 집단적 기억은 모두 공명에 의존하지만, 특히 개인의 과거에 대한 자기 공명은 더 분명하며, 따라서 더 효과적이다. 동물과 인간의 학습은 형태공명에 의해 시공간을 관통해 전해질 수 있다.
본문 중에서
화이트헤드가 명백히 드러냈듯, 물리학 자체는 베르그송이 이미 도달했던 결론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을 가지지 않는 물질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물체는 그 안에 시간, 즉 내적 지속을 가진 과정들이다. 화이트헤드의 이론 가운데 아마도 가장 놀라우면서도 기본적인 특성은 정신과 육체 사이의 관계를 시간의 관계로 바라본 그의 새로운 시각일 것이다. 화이트헤드에게 정신과 물질은 하나의 과정으로 연결된 두 개의 양상이다.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 이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열쇠다. 현실은 과정 내의 순간들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순간은 다음 순간을 제공한다. 순간들 사이의 차이는 경험자로 하여금 현재와 과거 혹은 미래의 순간들 사이의 차이를 감지하도록 요구한다. 모든 현실은 경험의 순간이다. 이것이 발현해 과거의 순간이 될 때, 그것은 '현재'의 새로운 순간으로 이어진다. 한편, 막 발현된 순간은 새로운 주체에게는 과거의 객체가 되며, 다른 주체들에게도 하나의 객체가 된다. 화이트헤드는 이를 "지금 이 순간에는 주체, 다음 순간에는 객체"라는 문구로 요약했다. 경험은 항상 '현재'이며, 물질은 항상 '예전'이다.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연결은 물리적 인과관계이며, 보통의 물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현재에서 과고ㅓ로의 연결은 감지 혹은, 화이트헤드의 전문용어를 사용하지만, '포착'이다. 이는 문자 그대로 파악이나 이해를 의미한다. (4장 물질은 의식이 없는가?169~170족)
루퍼트 셸드레이크 지음/ 하창수 옮김/김영사/ 524쪽/ 2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