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국정기조 전환 여부가 앞으로 남은 비교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아직 변화의 낌새가 보이지 않지만, 전임자는 한발 물러서는 행보를 선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치적 위기를 넘긴 바 있다.
◇ 국정기조 고수
박 대통령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총선 5일 뒤 청와대 회의석상에서 "선거 결과는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면서도 "이럴 때일수록 경제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개혁들이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선거 때문에 (노동개혁 등) 구조개혁이 지연될 경우, 우리나라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 "비서실과 내각은 경제 활성화와 민생 안정을 위한 정책들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달라" 등의 발언으로 국정기조 불변 의지를 천명했다. 박 대통령은 이로부터 3일간 각각의 청와대 행사에서 '4대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거 이 전 대통령도 지방선거 패배 다음날 청와대 회의에서 "이번 선거 결과를 다함께 성찰의 기회로 삼고 경제살리기에 전념하자"고 말했다. 이 역시 '민심을 수용하되, 국정기조는 변함없다'라는 역설적 통사구조다.
당시 청와대 내부에서는 "선거는 당이 치렀을 뿐"이라는 한가한 반응이 나왔고, 이후 며칠간 공식석상에서 대통령은 더 이상 선거민심을 거론하지 않았다. 선거 5일 뒤 예정돼 있던 대통령 라디오연설마저 취소됐다.
◇ 친위세력의 반란
친박계마저 '대통령 책임론' 제기에 주저없다. 최측근 이정현 의원은 22일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책임을 청와대도 같이 져야 한다. (대통령의) 소통문제는 어제오늘 지적된 게 아니다. 야당과 더 타협할 수 있도록 자세나 행태 다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계 중진 정우택 의원도 "대통령께서 이제는 새로운 통치스타일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고, 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비서실장이던 이학재 의원도 당내 쇄신을 주도하고 있다.
여론도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갤럽이 19~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29%로 정권 출범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총선이 치러진 한주 전보다 10%포인트나 빠졌다. 여당 지지도 역시 전주 대비 7%포인트 급락했다.
6년 전에도 패배 5일만에 열린 의원 연찬회에서 "대통령 빼고 다 바꾸라"는 등 계파와 상관없이 쇄신요구가 쏟아졌다. 이어 초선의원 40여명이 쇄신과 세종시·4대강 재검토 등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렸을 때도 김용태·김영우·권택기·정태근 의원 등 친이계가 대거 가담했다.
◇ 대통령의 선택은
2010년 참패 때와 현재 상황이 이처럼 빼다박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똑같을 것인지 아닌지는 박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다.
선거 참패의 원인을 국정기조 탓 대신 홍보 부족에서 찾았다는 등 비판이 없지 않았지만, 이후 당내 반발은 진정세에 들었다. 한때 등돌렸던 친이계도 세종시 수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시키며 청와대에 다시 충성하고 나섰다. 청와대는 다시 50대 총리 기용 등으로 쇄신 시도에 나서는 등 국정동력 회복 계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아직까지 국정기조 전환 선언이나 인적쇄신 시도와 관련한 행보는 보이지 않고 있다. 향후 박 대통령이 어느 쪽을 선택할지가 관심을 끄는 시점이다.
여권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선거 후폭풍이라는 '동일 증상'에 전현직 대통령이 국정기조 전환 대 고수라는 상반된 '처방'을 내린 상태"라며 "전임자와 같은 선택을 해서 새 활로를 찾는 것도 방법이고, 정반대의 길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지방 권력의 재편 수준이던 6년 전에 비해, 이번은 입법 권력의 상실이란 초대형 악재란 점에서 민심을 되돌리기 위한 일보후퇴가 더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