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례를 접한 현직 부장판사는 옥시레킷벤키저가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터진 직후 비밀리에 기존 주식회사를 청산하고 유한회사로 바꿨어도 법적인 책임은 승계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부장판사는 "법인이 어떤 방식과 목적으로 청산되고,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따라 법원의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며 "구(舊)법인을 청산시켰다고 해서 무조건 법적인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과거 법인과 새로운 법인의 대표나 임직원 등 구성원에 큰 변화가 없고, 단순히 흡수합병된 방식이라면 동일성이 유지되는 법인으로 판단해 과거 범죄에 따른 책임을 지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다른 현직 검사는 "통상적으로는 법인이 없어지면 공소권 없음을 내리지만, 옥시의 경우처럼 형사처벌과 사후 책임을 피하려고 의도적으로 법인을 바꾼 경우 새로운 판례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며 "법적으로 충분히 기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옥시레킷벤키저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손상 연관성에 대한 정부 발표가 난 직후인 2011년 12월 12일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조직을 변경했다.
형사소송법 328조에는 "피고인이 사망하거나 피고인인 법인이 존속하지 않을 경우 공소기각 결정을 하도록" 돼 있어 옥시가 이 조항을 악용해 법인을 청산하고 책임을 피해가려는 꼼수를 쓴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하지만 법인을 청산했어도 동일성이 인정된다면 새 법인에 대해 형사처벌도 가능해져 옥시의 꼼수는 소용이 없게 된다.
이밖에 옥시가 피해자나 주주들의 막대한 보상 및 배상금을 면하려고 의도적으로 법인을 청산했을 경우 형법상 '강제집행 면탈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
형사소송법 327조는 "강제집행을 면할 목적으로 재산을 은닉·손괴·허위양도 또는 허위의 채무를 부담하여 채권자를 해할 경우" 처벌하도록 돼 있다.
모 판사는 "옥시가 거액의 배상금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법인을 없앤 것이 확인되면 법인 청산 행위를 강제집행 면탈죄로 의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도 옥시 측 관련자들 뿐 아니라 법인을 기소하는 방향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법적인 부분을 검토중이지만, 법인에 대한 처벌 가능성도 충분히 열어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PHGM 인산염 성분이 든 살균제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제'를 판매했으며, 2001년부터 2011년 11월 수거 명령이 내릴때까지 10년간 판매율 1위를 기록해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것으로 알려진 회사다.
현재 검찰이 파악한 피해자수는 사망자 94명 등 총 221명이며, 이 중 옥시 제품의 피해자는 사망자 70명을 포함해 177명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