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과 희생으로 빛이 되어준 수많은 선교사들
CBS는 한국 선교 130주년이 지난 지금, 그 옛날 조선에 와서 한 알의 밀알로 썩어져 간 초창기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을 통해 이 땅에 전해졌던 복음의 순수한 열정과 생명력을 다시금 되새기기 위해, 특별기획 다큐 <예수의 흔적>(연출 홍재표PD)을 제작하고 있다. 1부 '사무엘무어 선교사'편과 2부 '제임스게일 선교사'편이 방송된 이후, 3부 '로제타 홀 선교사' 편이 오는 4월23일(토) 'CBS 시네마'로 방송된다
조선 여성들에게 빛이 된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
130여년 전, 여성의사에 대한 호소가 조선에 울려 퍼졌다. 여의사가 2만 2000명인 오늘과는 달리, 그 당시만 해도 여성은 의사를 꿈꿀 수조차 없었다. 남녀가 유별하던 유교 문화의 봉건주의 사회 속에서 여성의사가 없다는 것은 곧 여성은 남성과 같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땅의 수많은 여성이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는 질병과 싸우다 허무히 생명을 꺼뜨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로제타 홀은 남자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없었던 조선 여성들을 위해 한국 최초의 여성 전용 병원인 보구여관에서 의료 활동을 시작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환자들을 찾아 직접 성 밖으로 왕진을 다녔다. 한국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부터 진료를 시작한 그녀가 한국에 와서 첫 10개월 동안 치료한 환자 수가 2천4백 명에 이르고, 처방전 발행은 6000건이 넘는 것만 보아도 그녀가 의료 활동에 얼마나 전적으로 매달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당시 천민과 농민들이 주로 살았던 동대문 지역에 부인병원을 세워 동대문 바깥에 사는 소외된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의료사역을 다져가며, 수도권 일대에서 강습회와 무료 진료를 계속해 나갔다. 그 당시 로제타 홀이 운영한 동대문 부인병원은 현재 이화여대 목동병원이 되었다.
최초의 서양의사 '박에스더'를 양성하고
이대 병원, 고대 의과대학의 전신을 세우다
또한 직접 여자의학전문학교인 '경성여자의학강습소'를 세워 첫 졸업식에서 6명의 여자 의사를 정식적으로 세우는 역사를 이루어간다. 경성여자의학강습소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로 승격된 후, 고려대학교에 병합되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이 되었다. 로제타 홀은 전적으로 한국 여성을 위해 한국 여성이 스스로 교육을 받고, 치료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간 것이다.
최초의 한글 점자를 만들다
또한, 로제타 홀은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했던 장애인들을 향해서도 긍휼한 마음을 품는다. 그 당시 대부분 걷는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내버려지거나 편견 속에 무당이 되곤 했던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최초의 한글 점자를 도입하고, 직접 만든 한글 점자책으로 시각장애인 교육을 시작하며 특수교육의 문을 연다.
'평양의 오마니'로 불리며
가족을 잃은 눈물의 땅에서 부활의 소망을 외치다
1894년 청일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시체와 질병이 감돌던 평양에서 치료활동을 하던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을 병으로 떠나보내게 된다. 34살의 젊은 나이로 한국에 온 지 겨우 3년 만에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떠난 남편의 울림이 모두에게 깊이 새겨지고 있을 때, 그녀에게 선물처럼 찾아와 위안이 되어주었던 둘째 아이 이디스 마가렛마저 다섯 해가 되기 전에 이질로 먼저 보내게 된다. 그녀는 이 땅에서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잃었음에도 남편의 부의금으로 그를 기념하는 기홀병원을 평양에 세워 환자들을 치료하고, 딸을 기념하여 첫 서양식 건물로 세운 광혜여원 옆의 이디스 마가렛 기념 병동에서 어린이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한다. 남편과 딸을 연이어 여읜 고통 속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외치는 믿음을 보인 것이다. 그런 로제타 홀을 보며 평양 사람들은 ‘평양의 오마니’라고 불렀고, 메리 윌튼은 ‘온 인류의 사도’라 칭했다.
44년간 낯선 이국땅에서 사역하며, 낮고 천한 자들을 사랑으로 품고 복음의 진리로 회복시킨 그녀의 감동적인 삶을 오는 CBS 시네마를 통해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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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일) 오후 1시 0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