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를 다룬 영화 세 편은 지난 2년 간 모두 한 곳에서 배급됐다. 배급사의 이름은 '시네마달'. 대표인 김일권 PD는 영화 '다이빙벨'부터 '업사이드 다운'까지 세월호 영화들이 관객들과 만나도록 힘쓴 인물이다.
"세월호 사건은 한국 사회의 문제가 아주 집약적으로 들어가 있는 사건이고, 현재진행형입니다. 특별히 어떤 사명감 때문에 영화들을 배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유가족들이 나서서 뭔가 하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는 상황들이니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죠."
14일 개봉인 세월호 다큐멘터리 영화 '업사이드 다운'은 김동빈 감독의 배급 요청으로 인연을 맺은 작품이다. 그는 방송과 영화를 막론하고 세월호를 다룬 콘텐츠들이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김동빈 감독이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세월호 2주기에 맞춰 개봉을 하기로 했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크기나 심각성 그리고 국민들이 이로 인해 받은 충격에 비해 콘텐츠는 너무 적거든요. 방송도 제한적이고, 나오는 책들이나 그림, 음악 등도 굉장히 자발적인 시민의 힘으로 이뤄진 결과물입니다. 국가적 재난이고 문제임에도 시민의 힘으로 계속되는 것이 안타깝죠."
세월호 영화들의 배급은 결코 쉽지 않다. 접근성이 쉬운 대형 멀티플렉스에 영화를 걸고 싶어도, 매번 퇴짜를 맞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극장들은 '프로그램에 선정되지 않은 영화라 상영이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업사이드 다운'도 이와 같은 전철을 밟았다. 현재 확정된 '업사이드 다운'의 개봉관은 24개관. 개봉관 중 멀티플렉스는 메가박스만 이름을 올렸고, 모두 지역 극장이나 소규모 독립 영화 극장들이다.
"지금은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를 배급하는 것 자체가 많이 차단되어 있어요. 멀티플렉스는 아예 못 들어가고요. 일반적으로는 시사회를 위한 대관은 되거든요. 그게 경쟁사의 배급영화라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것조차 성사되지 않는 현실입니다."
"'다이빙벨'이 5만 명이 들었던 영화인데, 다양성 영화가 이 정도 관객 반응이 있으면 대체로 극장을 열어주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시장 논리에도 맞지 않고, 그러니까 알게 모르게 불이익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실제로 세월호 관련 영화 제작이나 배급을 하는 경우 정부 지원작으로 선정되지 않고, 정부 지원금이 깎이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어떻게 보면 생계를 걸고 하는 거니까 우리 영화를 틀어주는 극장들도 대단한 겁니다."
멀티플렉스 시스템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곧 도태를 뜻한다. 영화 '귀향'이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이 잘된 것에는 분명히 콘텐츠 자체의 힘도 있지만 멀티플렉스 흥행 시스템으로의 진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성공한 작은 영화들이 종종 나오는데 만약 국내 멀티플렉스에서 그 영화들을 상영하지 않았다면 그 정도 관객이 들어오지 않았겠죠. 흥행에서는 영화 자체의 힘만큼이나 시스템의 힘도 중요합니다. 시스템이 흥행을 만드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어요. 멀티플렉스가 도와주지 못하면 절대로 거기까지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세월호 영화들은 아예 그런 것들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리니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죠."
이번에 배급을 맡은 영화 '업사이드 다운'은 국내외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비를 모았다. 김일권 PD는 크라우드펀딩의 '자발성'은 긍정적으로 보지만 그 이면의 한계 또한 체감하고 있다.
"사실 크라우드펀딩을 하면 항상 목표액보다 넘치죠. 미처 펀딩을 하지 못했던 분들은 후에라도 도움을 주고요. 그런 분들을 보면 힘이 납니다. 세월호 문제와 아픔을 풀려고 하는 것에 유가족 분들이나 배급사만 있는 게 아닌 거니까요. 많은 분들이 함께하고, 응원해주는 것은 정말 좋지만 그것이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이 굉장한 다수가 되어야 법이나 제도가 바뀔 수 있어요. 크라우드펀딩의 자발성은 소중하고 중요하지만 그 한계 또한 농후합니다."
영화 배급 시, 가장 최우선 되는 것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뜻이다. '다이빙벨'부터 '업사이드 다운'까지 세 편의 영화를 배급하며 그 원칙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다.
"'다이빙벨' 당시에 유가족 분들에게 가장 먼저 시사회를 했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유가족 분들이 '영화와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영화를 배급하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 때와 지금의 유가족 분들 표정은 많이 다릅니다. 그 때는 정말 앞에 나오시면 마이크를 잡고 계속 우셨어요. 지금은 서로 힘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아픔이나 슬픔이 달라진 건 아니지만 함께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힘을 얻으셨어요."
"그들 또한 삶을 살아가야 하고, 가정도 꾸려야 됩니다. 다들 평범하게 일상을 살고 계세요. 활동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둘 모두를 병행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문제는 그들이 여전히 슬퍼하고, 진실에 대한 억울함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정치적 문제와 엮여 배·보상금을 밝히는 집단으로 취급된다는 것입니다. 유가족 이미지는 미디어를 통해 왜곡됐다고 할 수 있죠."
세월호 사고의 이면에는 우리가 너무도 익숙해진 병폐들이 숨어 있다. 인간적 가치가 사라진 사회 속에서 '나만 아니면 된다'는 무한 이기주의. 공감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자본의 가치로 환산된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과 관련된 문제들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사회·정치 시스템들이 있죠. 자본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 생명은 중요한 가치가 아니게 됩니다. 세월호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겪는 게 아니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넘어가는 거죠.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패배주의 역시 만연해 있습니다. 공직자들 역시 세월호를 운행한 청해진 해운과 유착 관계에 있었고요. 우리가 이런 시스템 속에서 어떤 것들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언론 또한 다를 것이 없다.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지 못하고 자극적 이슈만 뒤쫓는다. 결국 세월호 사고 이후 모든 초점이 청해진 해운 소유주인 유벙언에게 흘러간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세월호 관련 사실을 중립적 입장에서 보도하고 지적해야 되는데 언론이 오히려 더 부추기는 상황이었죠. 언론은 안전 문제를 드러내고, 진실을 규명했어야 합니다. 그게 올바른 여론 형성이지만 마치 유가족을 돈만 아는 사람처럼 만들거나, 세월호 문제 해결의 초점을 유벙언에게 맞췄죠. 한 마디로 언론의 기능을 다하지 못했어요."
그는 마지막으로 정부를 향한 따끔한 한 마디를 건넸다. 정부는 세월호 사고를 절대 외면해서도, 잊어서도 안 되는 주체다. 세월호 콘텐츠에 가해지는 외압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책임이 분명히 있으니 그 책임을 다하는 게 맞죠. 유가족 분들의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고 세월호 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책임있는 사람들은 처벌해야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사건을 은폐하고 증거를 소멸하고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국민의 뜻과도 맞지 않고요. 최근 정부는 자신과 반대되는 국민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데 그건 건강한 국가라고 볼 수 없습니다. 외부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는 사회는 정말 위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