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째 응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시험을 많이 봤다.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또 보게 된다. 작년 말에 기업 임원 차량 운전사로 취직했지만 출근해서도 시간이 빌 때는 시험공부를 한다" (35세 직장인 공시생 김모씨)
9일 전국에서 일제히 치러진 국가공무원 9급 필기시험에는 사상 최대인원인 22만명이 몰렸다.
20대 청년층이 가장 많지만 40세 이상도 1만명을 훌쩍 넘겼다.
최근에는 국가공무원 지역인재 7급 지원자 송모(26)씨가 시험지와 답안지를 훔치고,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합격자 명단까지 조작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붙잡힌 송씨는 기자들 앞에서 "7급 공무원이 꼭 되고 싶었다"고 했다.
공직 최하위직인 9급에 연령을 불문하고 수십만명이 몰리고, 7급 공무원이 되고자 범죄까지 저지를 정도로 치솟은 공무원 인기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처우 간극이 극심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9급 초임도 연봉 2천500만∼2천700만원
공무원 급여가 '박봉'을 벗어난 지는 한참됐다.
9급 초임부터 국무총리까지 우리나라 모든 공무원의 평균연봉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소득월액 평균은 작년 기준으로 5천604만원(세전)이다. 2011년 이후 4년간 연평균 상승폭을 적용하면 올해는 5천860만원선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장기근속자가 많은 교직원, 위험수당이 많은 경찰과 소방관 등이 상대적으로 총급여가 많고 일반직 공무원은 적은 편이다.
그러나 근속기간이 짧은 초임 공무원도 우리 사회 전반과 비교하면 그다지 박하지 않다.
기본급에 해당하는 '봉급'에 정액급식비·직급보조비·정근수당·명절휴가비와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맞춤형 복지비'까지 고려하면 9급 지방직의 초임은 2천 600만∼2천700만원 수준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414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4년제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은 평균 3천491만원이다. 그러나 경총의 조사에 포함된 주요 400여 기업에서 뽑는 정규직 일자리는 전체 취업준비생 중 극히 일부에게만 돌아간다.
이 단체가 최근 발표한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기간제 초임은 2천189만원으로 9급 공무원보다 훨씬 적다.
고용 인원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많고, 기간제가 계속 늘어나는 현실을 고려하면 9급 공무원 처우가 기업 신입사원에 견줘 전혀 나쁘지 않은 셈이다.
◇ "채용 공정…성실히 공부하면 언젠가 합격" 기대감도
정년이 확실히 보장되는 공무원의 안정성은 기업과 비교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방지법'이 시행되면서 고위직도 대부분 59세까지 근무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 같은 일·가정 양립정책과 양성평등 인사정책은 특히 여성 지원자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이다.
작년에 개혁이 단행되긴 했지만 공무원연금도 여전히 국민연금 가입자보다 좋은 조건이다.
반면 민간부문은 정년보장에 대한 기대 자체가 없고, 정시 출퇴근과 주 5일제마저 보장되지 않는 곳이 부지기수다.
비정규직이 양산되면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처우 간극은 좁혀지지 않으니 공직 인기가 폭발할 수밖에 없다고 공시생들은 입을 모았다.
대기업까지 포함해도 공직만한 처우를 찾기 힘들다는 것.
노량진 공시생 곽모(26)씨는 "일반 회사에 들어갔을 때 받는 급여 수준이나 명예퇴직, 조기퇴직 압박 등을 비교하면 공무원이 훨씬 낫지 않으냐"고 반문하면서 "젊은층이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선발인원이 많고 채용이 공정하므로 누구든 끈기 있게 공부하면 합격한다는 기대를 품을 수 있다는 점도 공시 열풍 배경으로 꼽힌다.
기업 차량을 운전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모(35)씨는 "사법고시처럼 많이 어렵지 않고 '실수만 안 하면 다음에는 붙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어찌보면 공시는 마약 같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