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수행기사 A 씨는 수습 3개월 뒤 계약직 전환 고작 이틀 앞두고 해고됐다. "웃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사고는커녕 지각 한 번 없었고, 일을 못해 지적을 받은 적도 없었다던 A 씨는 대기업 회장·사장도 아닌 '사모'를 모시는 일명 사택기사로 일하다 예고 없이 잘렸다.
기사들에 따르면 사택 기사는 사장 등 임원 기사보다 그야말로 '자동차 키를 내던지고 싶은' 상황에 자주 직면한다. 사택기사의 주업무는 사모의 개인 일정, 자녀의 등하교·하원이다. 정원에 물 주기, 잡초 뽑기, 창문 닦기, 반려동물 사료 주기 등 집안일도 떨어진다. 해야하는 일은 임원수행기사보다 다양하고 많지만 임금은 낮다. 그렇다고 대우를 잘해주는 것도 아니다.
눈에 띄지도 않는다. 주위에 지켜보는 직원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용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1대 1로 대면 상황이 많다. 아무리 갑질을 해도 주변에 드러나지 않아 묻혀버리기 쉽다.
한 재벌가의 사모차를 몰았던 수행기사 B씨는, 길이 막히기라도 하면 "아저씨 바보에요? 왜 이길로 와요? 생각 같은 거 안해요?"라는 말은 물론 "멍청이냐?"는 막말까지 참아야 했다.
또다른 사택기사 C씨는 "에어컨이나 히터를 뒷자석에만 켜고 앞에는 틀지 못하게 한 사모도 있어 한여름이나 한겨울에 그만두는 기사들이 많았다"고 증언했다.
사택기사 D 씨는 "명품백을 잘못 둬 구겨졌다는 이유로 사모가 월급에서 감봉하라는 지시를 내린 적도 있다"면서 "그 가방이 1천만원을 호가하는 명품백이어서 일년동안 월급에서 일정액씩 제외하라는 보고서가 작성된 적도 했다"며 진땀 흘린 경험담을 취재진에 들려주기도 했다.
또 "해외연수를 간 자녀에게 화장품을 건네기 위해 회사 직원이 당일 치기로 중국에 다녀온 걸 본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그 로션은 워낙 유명해서 중국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P제품"이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또다른 한 재벌가 수행기사는 "회장차를 몰다가도 사택 기사가 해고거나 그만두면, 내 의사는 조금도 묻지도 않고 그 자리로 그냥 보내버리면서 임금은 또 깎는다. 그런데 일은 더 힘들고 인격적으로 무시도 많이 당한다"면서 "이것도 일종의 갑질 아니냐"며 서러움을 나타냈다.
다만, 그는 "모든 재벌가가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싸잡아 욕할 필요는 없다"고 두둔하기도 했다.
삼성그룹 수행기사는 정규직. 보너스, 상여, 휴가비도 나오고 인격을 모독하거나 그런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그래서 기사들 사이에서 꿈의 직장으로 불린다"고 전했다.
어느 대기업 오너가에 일했는지 밝히기 꺼린 한 기사는 "오랫동안 수행한 기사에게 일부 오너들은 퇴직금이라며 노후를 보낼 땅을 사주거나, 택시기사가 되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