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포문을 연 것은 미국이다. 토니 블링큰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29일 브루킹스 연구소 강연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한 중국이 반대하더라도 사드 배치를 협의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드가 중국의 전략적 이해를 해치지 않는 방어적 시스템임을 알 수 있게 기술적 제원을 설명하겠다고 제안했다.
중국은 즉각 거부했다.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정례브리핑에서 “사드 시스템은 조선반도의 방어라는 정상적인 수요를 초월하는 것으로 중국의 정당한 국가안전 이익을 위협하고 지역의 전략적 안정을 파괴한다”고 주장했다.
사드 논란은 지난 2일 ‘역대 최강’의 안보리 결의 채택에 중국과 러시아가 동조하면서 수그러든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미국이 갑자기, 그것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업적으로 평가될 마지막 핵안보정상회의 직전에 논란을 자초한 것은 다소 뜬금없는 일일 수 있다.
더구나 핵안보정상회의의 기본 취지이자 주요 의제는 테러집단에 의한 핵 탈취 등을 막기 위한 것으로 북핵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미·중 패권 다툼의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북핵과 사드, 남중국해, 대만 등의 문제는 함께 맞물려있어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의 관심사는 북핵에 머물러있지만 미·중은 사드와 남중국해 등의 여러 카드를 넣다 뺐다 하며 보다 큰 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의는 오히려 미·중이 간만에 담판을 벌일 만한 외교무대이며, 이미 미국은 기선 장악을 위한 선공을 날린 셈이다.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을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중국은 사드에서의 수세를 만회할 카드로 비핵화·평화협정 병행론이란 포석을 미리 깔아둔 상태다.
중국 입장에선 안보리 결의 한 달에 즈음한 이번 회의를 평화협정을 부각시킬 적기로 판단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과의 잇단 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 논의 필요성을 직접 거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이에 대한 한·미 양측과 중국의 입장차가 현격해 절충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30일 블룸버그 통신과 인터뷰에서 지금은 제재와 압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물론 중국 측도 당장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자는 입장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미국이 사드를 통해 압박을 가하면 중국이 반발하면서 불가피하게 평화협정을 ‘조기 등판’ 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럴 경우 우리와 중국과의 입장차는 더 벌어지면서 그간 어렵게 이뤄놓은 대북공조의 틀마저 훼손될 가능성이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