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자키 청년 칼럼②] "총선 청년공약,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깜깜이 선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딱 들어맞는 표현입니다. 막장 드라마 같은 공천파동이 끝나고 나니, 투표까지 고작 보름 정도가 남았답니다. 우리 유권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후보를 검증하고 정당을 평가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선거 체제에 돌입한 원내정당들이 서로를 심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그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이라곤 25시간 15분의 '옥새투쟁'인데, 이대로라면 굳이 투표할 이유가 있을까요?


후보등록까지의 혈투에 '정책'은 애초에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예쁘게 만들어진 정책공약집은 있지만, 역설적으로 정책 자체는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정책과 함께 사라진 존재가 있으니, 바로 '청년'입니다. 일례로 더불어민주당은 불법공천까지 자행하며 청년 비례대표 후보들을 당선 안정권 바깥으로 내쫓았습니다. 청년단체들에게서 '청년실종·정책실종 깜깜이 선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잘 찾아보면 정당마다 나름대로 공들여 내놓은 청년공약들이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한 구성을 자랑합니다. 사회로 첫 발을 내딛는 청년의 현실이 그만큼 나빠졌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정치인들이 청년문제를 입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데 반해, 정작 청년을 위한 정책이 선거의 중요한 화두가 되지 못해 아쉬울 뿐입니다. 그래도 청년공약이 앞으로의 선거에서 '중요한 기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단히 짚어보긴 해야겠습니다. 아무리 깜깜이 선거라도 눈 감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번호 순서대로 시작해볼까요?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청년공약은 '청년희망아카데미'를 전국으로 확대하자는 것입니다. 관제 모금운동으로 비판 받았던 청년희망재단이 운영하는 사업이고, 그럴싸한 교육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거 집권여당이 대표공약으로 내세울 거리가 되나요? '청년 국제인턴'을 늘리겠다고도 하는데, 인턴 열정페이 문제부터 먼저 해결하는 게 순서에 맞습니다. 노동시장 개혁과 창조경제로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그림도 여전한 것을 보니, 역시 집권여당의 진짜 의지는 기승전 '노동개혁'에 있습니다. 쉬운 해고 논란을 낳은 그 노동정책 말입니다.

다음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청년안전망'이라는 좋은 슬로건에 비해 내용이 아쉽습니다. 일단 취업활동 지원금은 크게 튀지 않는 표준적인 설계기 때문에 한 마디로 무난합니다.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일자리 창출 분야입니다. 청년일자리 70만개를 약속하였는데,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선언이다 보니 청년의 입장에서는 별로 미덥지가 않습니다. 세밀한 로드맵을 함께 제시하지 않아서 일까요? 1년에 단 5만개의 일자리라도 '실제로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책임 있는 태도가 더 필요한 때입니다. 제1야당다운 정교함을 기대하는 것은 과한 바람일까요?

국민의당은 '공정한 출발'이라는 기치 아래 후납형 청년구직수당을 1번 청년공약으로 내놓았습니다. 이 정책 재밌습니다. 다른 야당들의 여러 청년수당 정책과는 확실한 차별성이 있습니다. 구직 과정에서 최대 300만원까지 당겨쓰고, 취업 후에 차근차근 갚으라는 겁니다. 포퓰리즘 논쟁을 영리하게 피해가려는 노력도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공짜는 없어'라는 말을 건네는 듯한 국민의당의 청년공약에는 청년이 보장 받아야 할 권리나 복지제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정책의 기본을 이루는 철학이 없다는 뜻입니다. 당장의 합의를 이끌기 쉽다는 함정에 빠지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원내 네 번째 정당인 정의당의 경우, 그간 청년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요구를 나름 성실하게 반영한 청년공약 포트폴리오을 제출했습니다. 특히 '청년수당'의 하나로 분류할 수 있는 청년디딤돌급여 정책은 기존 고용보험에 더해 보편적인 실업 안전망을 강화하는 틀 안에는 제시되고 있어 다른 정당에 비해서도 구체적이고 완결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결국 정책을 실현하는 것은 '정치적 힘'이라는 측면에서 정의당이 국회 내에서 얼마나 강한 정당이 될 수 있을지를 증명해야 하는 결정적인 관문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은 모범답안이 오히려 버거워 보이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청년정책에 완전히 새롭게 접근하는 정당들도 있습니다. 어렵고 불리한 조건에서 선거를 치르고 있는 작지만 단단한 정당들입니다. 노동당과 녹색당은 구직활동을 전제로 하는 청년수당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지급되는 '기본소득'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청년의 '권리'와 '소득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청년정책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한편 '흙수저의 직접정치'를 표방하여 '청년 근로장려세제'를 포함한 청년공약을 발표한 민중연합당도 있습니다. 원외 정당들의 청년공약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합니다. 비례대표 정당투표만큼은 '차악'이 아니라 '최선'에 투표하고 싶으니까요.

지금까지 각 정당의 청년공약을 뜯어보며 주로 아쉬운 평가를 남겼습니다. 조금 야박한가요? 아니요, 정당들에 넉넉한 점수를 주기에는 청년의 현실이 너무 빠르게 나빠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선거조차 별다른 희망의 근거가 되지 못하고 있어 암울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정책이 더 나을 지는 겨뤄봐야겠지만,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많은 정당들이 정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최저임금 1만원'이 상징하는 것 또한 그렇게 절실한 삶의 요구일 것입니다. 정당들이 이번에 내놓은 청년공약은 조금씩은 부족하나마 포괄적인 사회정책의 넓은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청년공약들이 앞으로 남은 선거에 더 많이 이야기되길 바랍니다. 이번 총선만큼은 청년정책의 실질적인 전환점이 되어야 합니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는 20대 총선을 맞아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청년 칼럼’을 마련합니다. 희망과 열정보다는 실망과 분노가 실려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이번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들과 유권자들에게 의미 있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칼럼의 내용은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CBS의 입장과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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