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비박계와 친박계 각 진영에서 상징적 인물 일부를 살리는 수준에서 타협점을 찾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김무성 대표는 막판 뒷심을 발휘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 김무성 중재안 '진박 3명만 살리자'
새누리당 최고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김 대표가 무공천 지역으로 남기겠다고 선언한 5곳과 법원 결정으로 공천이 무효화된 1곳 등 모두 6곳의 공천 문제를 논의했다.
김 대표는 전날 20대 총선 후보자 등록이 마감될 때까지 최고위를 열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친박계 최고위원들의 압박이 이어지자 결국 최고위를 개최했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도 "마음에 변함이 없다"며 5곳을 무공천 지역으로 남기겠다는 입장을 계속 고수했고, 친박계 최고위는 "공당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공천안 의결을 주장했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김 대표가 보류된 6곳 가운데 대구 동구갑과 달성군, 그리고 수성구을은 공천관리위원회 결정대로 추인하는 대신 대구 동구을과 서울 은평구을, 송파구을은 무공천 지역으로 남기자고 중재안을 냈다.
결국 친박계 최고위원들은 김 대표가 계속 공천안 추인을 거부할 경우 이를 강제할 현실적인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김 대표의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최고위 뒤 "다들 아픔과 또 고뇌의 과정이 있었지만 이제 혼란과 혼돈을 접고 미래로 가야한다"면서 "아파도 미래로"라고 외쳤다.
이에따라 6명의 진박(眞朴) 후보 가운데 대구 동구갑의 정종섭, 달성군의 추경호, 수성구을의 이인선 후보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대구 동구을의 이재만, 서울 은평구을의 유재길, 송파구을의 유영하 후보는 총선 출마가 원천봉쇄됐다.
5곳을 무공천 지역으로 남기겠다고 밝힌 김 대표는 막판에 중재안을 제시하며 한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비박계 공천 탈락자 가운데 유승민(대구 동구을).이재오(서울 은평구을) 의원은 살렸다.
유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힌 뒤 비박계를 향한 공천학살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또 친이명박계 좌장인 이 의원은 18대 총선 공천 당시 친박계를 향한 공천학살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한 '보복공천'의 대표적 사례다.
따라서 김 대표가 '옥새 투쟁'을 통해 상징성을 가진 두 사람의 지역구를 무공천 지역으로 남기며 다시 한번 기회를 줬다는 평가다.
유영하 후보의 공천을 막은 것은 지지율이 타 후보에 비해 낮았다는 측면 뿐만 아니라 친박계 핵심 원외인사인 그에게 단수추천으로 텃밭 공천을 주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또 다른 의미에서 상징성을 가진 2명의 진박 후보를 살리는 것으로 친박계, 더 나아가 박 대통령과 타협점을 찾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종섭 후보는 박근혜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추경호 후보는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다. 특히 정 후보는 대구지역 진박 논란의 진원지이며, 추 후보는 박 대통령의 의원시절 지역구를 물려받았다는 상징성을 가진다.
그동안 친박계는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고향에서 자신의 국정운영 철학과 잘맞는 인물을 몇명 공천하겠다는 것이 뭐가 그렇게 큰 문제냐"라고 항변해왔다.
이인선 후보가 최종 공천된 대구 수성을은 법적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최고위로부터 추인을 받은 지역으로 김 대표가 무공천 지역으로 남기겠다고 선언한 5곳에 처음부터 포함되지 않았다.
◇ 반쪽짜리 불구 옥새투쟁 '의미있는 성과'
이번 공천파동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인물은 단연 '옥새투쟁'의 주인공 김무성 대표다.
김 대표는 그동안 박 대통령, 그리고 친박계와 대립각을 세우다가도 30시간 안에 무릎을 꿇는다는 의미의 '30시간의 법칙'으로 비아냥의 대상이 됐다.
특히, 이번 공천 과정에서 정치생명을 걸고 '100% 상향식 공천'을 수호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칼춤' 앞에 존재감 없는 대표라는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비박계 학살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와 그 측근 의원들은 모두 공천장을 따내며 무사귀환하자 친박계와 일종의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총선 후보자 등록 첫날인 24일 김 대표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유 의원 지역구 등 5곳을 무공천 지역으로 남기겠다는 폭탄선언을 하자 친박계가 발칵 뒤집혔다.
당헌.당규상 최고위 의장으로 회의 개최권과 사회권을 가진 김 대표가 최고위를 열지 않거나, 열더라도 공천안 의결을 거부하면 이를 뒤집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순식간에 공수(攻守) 관계가 뒤바뀐 상황에서 김 대표의 중재안을 친박계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김 대표의 '옥새투쟁'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
이에따라 김 대표는 비록 '반쪽짜리' 옥새투쟁이라는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사그라들뻔 했던 대선 후보로서의 불씨를 다시 살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 비박계 의원은 "김 대표가 이번 공천과정에서 대선 후보로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래도 막판에 뒷심을 발휘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했고 그 평가는 총선 뒤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 비서실장인 김학용 의원은 최고위 뒤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당대표로서 잘못된 공관위 결정에 정면으로 맞서 내용과 절차가 명백히 잘못된 3곳을 무공천으로 관철했다"며 "당의 갈등을 봉합하고 파국을 막기위한 대표의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