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장우재 연출, 또다시 관객 홀린다

연극 ‘환도열차’ 2년 만에 재공연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평가받는 장우재 연출의 연극 ‘환도열차’가 2년 만에 재공연된다. 2014년 초연 당시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동아연극상 희곡상’, ‘공연과 이론 작품상’ 등 주요 상을 휩쓸었던 작품이다.

‘환도열차’는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스토리 라인을 띄고 있다. 연극이지만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이는 영화가 연극보다 수준이 높다는 의미가 아니다. 연극으로는 구성하기 힘들 것 같은 과거와 미래의 시간 구성을 좁은 무대 위에서 부족함 없이 재현한 데 대한 극찬의 표현이다.

연극 '환도열차' 중.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연극은 1953년 피난민을 싣고 부산에서 출발한 환도열차가 2014년 서울로 시간을 이동하는 황당한 사건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국전쟁 때문에 남편(윤상화 분)과 헤어진 지순(김정민 분)이 남편을 만나기 위해 열차를 탔다가 2014년 서울로 오게 됐다. 지순과 함께 열차를 탔던 피난민들은 모두 시체로 발견됐다.

지순의 시각을 통해 보이는 2014년 서울은 욕망이 가득한 도시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순의 남편이 있다. 90살이 다 된 2014년의 남편은 더 이상 지순이 알던 과거의 착한 남편이 아니다. 전쟁 중 죽은 사업가 친구의 이름을 빌려 가짜로 살며, 한국의 최고 일류 기업을 이끄는 회장이 됐다.

연극 '환도열차' 중.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지순은 남편을 만난 것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도 변해버린 모습(외면 말고 내면)에 충격을 받고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과거의 흔적을 찾아다닌다.

지순은 남편이 가짜로 계속 살기 위해 저지른 악행도, 그리고 욕망이 가득한 이 한국사회도, 아직도 전쟁 중(휴전)이라는 게 믿을 수 없다. 지순은 2014년의 현실을 부정하고 이 모든 게 ‘이야기’일 거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환멸’ 그 자체였다. 지순은 자신의 시공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연극은 현재의 시공간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 지순을 통해 관객들에게 ‘진정으로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사회가 과연 지금의 모습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연극 '환도열차' 중.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재연을 다시 준비하면서 장우재 연출은 초연 대비 30분을 줄여 러닝 타임을 2시간 30분으로 만들었다. 희극적인 내용을 부각시켜 극적 대비감을 더했다. 또한 작품 본질의 메시지를 더욱 명료하고 섬세하게 드러내 극 전개를 역동적으로 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의문이 든 것은 2014년으로 온 열차이다. 1953년에 출발한 열차가 60년 미래로 타임슬립을 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타임슬립을 한 시간이 왜 하필 2014년인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초연 당시에는 현재성을 부여하기 위해 2014년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지만, 재연하는 지금은 2016년이므로 타임슬립 한 시간을 지금으로 변경해도 무리가 없다. 그럼에도 장우재 연출은 2014년을 고집했다.

이에 대해 장 연출은 "(재연을 준비하면서) 환도열차가 도착한 시기를 2000년 이전으로 바꿔도 볼까를 생각했다가 말았다"며 "2014년 서울을 본 지순이 나에게 던진 질문이 있는데, 이게 변화하거나 해소될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질문을 던질 시기가 된다면 바꿔보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장우재 연출. (예술의전당 제공)
장 연출이 이렇게 2014년을 고집하면서 연극과 현실의 묘한 접점이 생기는데 바로 '2014년 4월 16일'이다. 극 중 미국 '나사'에서 환도열차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토미(김용준 분)가 사건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시기가 바로 4월 16일이다.

토미의 마지막 대사에서 "오늘의 뉴스, 날씨 맑음, 나들이 가기 좋은 날. 현재 시간 4월 16일 오전 7시 35분"이라고 말한다. 토미는 중간중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전달된 뉴스를 읽어주는데, 대부분 이 내용들이 가싶이거나, 정작 중요한 것을 덮고 가리는 이슈이다.

장 연출은 '4월 16일'이라는 짤막한 대사 한 마디를 통해, 세월호 참극이 일어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행형임을 에둘러 말한다. 마치 1953년의 지순이 2014년의 한국을 보며 "왜 60여 년이 지났는데도 (남북은 전쟁 중인지)"라고 의문을 품는 것처럼, "왜 2년이 지났는데도 (참사의 진실은 안 밝혀졌는지)"라고 묻는 것이다.

그 순간 관객은 내가 이야기를 보고 있는 건지,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이야기인 건 아닌지 스스로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야기꾼 장우재 연출에게 홀리는 것이다.

3월 22일~4월 17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중학생 이상 관람. 1만 원~5만 원.

문의 : 02-580-1300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