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일가가 대주주인 대기업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이 지난해 2월 효력을 발생한 이후 첫 번째 사례이다.
지난해 2월에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대기업 총수 일가가 부당 내부거래로 특정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줘 매출이나 이익을 끌어올린 뒤 상장시켜 막대한 부를 취득하거나 승계자금을 편법으로 마련해온 행태를 없애도록 하고 있다.
◇ 현대그룹 계열사 간 부당거래 덜미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이날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에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와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 금지 조항을 어겼다는 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의 기소장에 해당)를 발송했다.
총수일가 지분이 30%(비상장사는 20%) 이상인 대기업 내부 거래액이 연 200억원을 넘거나 연 매출액 12%를 넘을때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된다.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매제가 보유한 회사 두 곳에 일감을 집중적으로 몰아준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 조사 결과 현대증권은 지점용 복사기를 임차 거래할 때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현대그룹 계열사인 에이치에스티를 거래 단계에 추가했다.
거래 과정에서 실질적 역할이 없는데도 총수 일가가 소유한 회사를 매개로 거래하면서 중간 수수료인 '통행세'를 주어 부당 이득을 취하게 한 것이다.
에이치에스티는 현 회장 매제인 변찬중 씨가 지분 80%를 보유한 회사다. 오너 일가 지분 보유율이 95%에 달한다.
◇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부당거래 수백억대
이 회사의 2014년 기준 매출액은 99억5천600만원이었는데, 현대엘리베이터(11억8천400만원), 현대유엔아이(8억9천200만원) 현대증권(41억2천300만원) 등 국내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69억8천800만원을 올렸다.
현대증권 현정은 회장 일가가 지분 72.72%를 소유한 비상장 IT업체인 현대유엔아이에 거액을 주고 주전산기 교체사업을 맡기는 등 전산기 용역을 몰아줬다.
공정위는 현대로지스틱스가 택배송장용지 납품업체인 쓰리비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준 정황도 확인했다.
현대로지스틱스 역시 변찬중(40%)씨 등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현대로지스틱스는 현대그룹과 현정은 회장이 보유하던 지분 88.8%를 올해 초 롯데그룹에 매각, 현재 롯데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현대로지스틱스는 다른 경쟁 택배회사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가격으로 쓰리비에서 택배운송장을 구매해 오너 일가 소유 계열사를 부당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택배운송장은 택배물품의 발송인, 수취인 등의 정보를 기재해 화물 행선지를 명확히 하고 거래내용을 입증하는 자료다. 택배운송장을 공급하는 업체는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다.
◇ 더 비싼 가격에 택배운송장 구매 오너일가 계열사 부당지원
쓰리비는 2014년 매출액이 34억8천900만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32억8천300만원을 현대로지스틱스에서 올렸다.
공정위는 심사보고서에 대한 기업들의 의견서를 받은 이후 이르면 다음 달 전원회의를 열어 제재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5월 현대그룹 내 불공정거래 정황을 포착, 서울 종로구 현대로지스틱스 사무실과 여의도 현대증권을 방문해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현대그룹이 로펌(법무법인)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확인하고 공정위에 소명(최소 2주일내)하면, 공정위는 전원회의 일정을 잡고 이에 대한 결론을 낸다.
통상 심사보고서 발송 후 1~2개월 후 전원회의가 열리는 것을 감안하면 다음 달 중에 대기업 총수에 대한 첫 일감몰아주기 제재가 이뤄질 전망이다.
공정위는 현대그룹을 포함해 한진, 하이트진로, 한화, CJ 등 5개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도 조사해 왔는데 이들 대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조사도 조만간 마무리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