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탄올 또는 메틸 알코올. 화학식은 CH3OH. 흡입과 섭취, 피부접촉을 통해 신체에 흡수되며 장기간 또는 반복 노출되면 중추신경계와 시신경에 손상을 일으킨다. 최근 파견 노동자 4명의 연쇄 실명 사고를 불러온 독성물질이다. (관련기사:어느 퇴근길, 갑자기 당신도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고속으로 돌아가면서 금속을 깎는 절삭구의 온도가 올라가지 않도록 노즐을 통해 메탄올이 끊임없이 분사된다. 알코올은 CNC, 즉 컴퓨터수치제어 기계의 윤활제 겸 냉각제로 사용된다. 다만, 알루미늄처럼 녹이 슬지 않는 비철금속에만 알코올을 냉각제로 사용할 수 있다.
CNC 제조사들은 냉각제로 알코올을 쓰도록 하면서 ‘에탄올’을 명시하고 있다. 메탄올의 치명적 독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다. 그런데도 문제의 사업장들은 죄다 메탄올을 사용했다.
춥다고 창문까지 닫아놓은 꽉 막힌 공장에서 파견 노동자들은 목장갑 한 켤레만 끼고, 그 흔한 마스크도 없이 연신 에어건으로 알루미늄 부품에 들러붙은 메탄올을 불어댔다. 호흡기와 눈, 피부로 메탄올이 흡수되는지 알지도 못한 채. (관련기사:보호장비는 '목장갑' 뿐… 메탄올 자욱한 '실명 작업장')
이처럼 위험한 메탄올을 대놓고 사용한 이유는 딱 한가지다.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노동건강연대 자료에 따르면 에탄올 1kg의 가격은 대략 1200원. 그러나 같은 양의 메탄올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500원 수준이다.
그렇다면 최근에 갑자기 파견 노동자들의 메탄올 중독 사고가 잇따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삼성전자와 갤럭시 S6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 갑자기 쏟아진 일감.. 그 뒤에는 갤럭시 고급화 전략
지난해 3월 1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5' 행사를 하루 앞두고 삼성전자의 갤럭시 S6와 S6 엣지가 베일을 벗었다. 그날 공개된 ’세계에서 가장 진화되고 강력한 스마트폰‘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된 일체형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동안 사용하던 플라스틱 케이스보다 더 얇고 가벼우면서도 고급스런 디자인, 거기에 충격에도 강한 몸체를 만들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그동안 애플의 아이폰에 비해 갤럭시 시리즈의 강점으로 꼽혔던 탈착형 배터리까지 버릴 정도로 S6는 고급화에 역점을 뒀다.
그렇게 갤럭시 S6 출시 이후 ‘프리미엄 폰=일체형 알루미늄 몸체“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스마트폰 메탈 몸체 관련 납품업체들의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고, 동시에 알루미늄을 정밀 가공하는 CNC 일감이 인천, 부천, 안산 등의 하청공장에 밀려들었다.
업체들은 일손이 부족해지자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파견직 근로자를 대거 고용했다. 또 단가를 낮추고 마진율을 높이기 위해 메탄올을 사용했다. 메탄올 중독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은 여지없이 모두 삼성전자에 알루미늄 몸체에 들어갈 부품을 공급한 3차 협력업체들이었다. (마지막 4번째 실명 위기 노동자는 LG폰의 부품을 만들다 산재사고를 당했지만, 이 공장 또한 직전까지 삼성전자에 납품을 하고 있었다. 단지 시차의 문제일 뿐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고급폰을 만들기 위해 세계적으로 '가장 후진적인' 저급한 노동 환경이 형성되는 아이러니. 결국 앞날이 창창한 20대 파견직 노동자들을 실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때문에 노동관련 단체들은 일련의 메탄올 실명 사고와 관련해, 원청인 삼성전자나 엘지전자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원청이 파견 노동자를 쓰는 하청 기업의 작업 환경에 대해서도 감독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 높아지는 원청의 사회적 책임 요구, 삼성도 규범은 있지만...
실제로 지난 2012년, 애플의 주력 납품업체인 중국 팍스콘 공장에서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노동자들이 잇달아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을 두고 국제적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팍스콘이 아니라 원청인 애플이 직접 미국의 NGO인 '공정노동위원회(FLA·Fair Labor Association)'에 해당 공장의 노동환경에 대한 조사를 요청한 적이 있다.
이처럼 국제적으로는 하청업체의 노동권 침해와 관련해 원청의 책임을 규정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담론들이 형성되는 추세다.
그중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국제표준인 SA8000이 주목받고 있다. SA8000(사회책임경영)은 원청이 협력회사와 민간직업소개업체, 하도급자의 부적합 사항과 중대 위험요소를 평가하고, 위험요소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모니터링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는 SA8000 미인증 상태고, LG전자의 일부 사업장은 인증을 받았지만, 스마트폰 공정에 대해서는 인증이 없다.
다만, 삼성전자는 국제적 기준 가운데 하나인 EICC, 즉 전자산업국제시민연대에서 마련한 지침을 준수하겠다고 공언하고, 해마다 보고서를 내고 있다. 그러나 EICC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EICC지침을 보면 하청업체 화학물질관리나 하청업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문제에 삼성도 관심 기울이고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며 “그런데 이번 (메탄올 중독 산재) 사건으로 미뤄보면 약속을 과연 지키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1차 협력사가 몇 백개고, 2차로 가면 3천개가 넘고, 3차는 알 수도 없다”며 “개별 기업은 계약으로 규정하게 되는데, (원청이) 3차 협력업체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경영간섭이 된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렇다면 공급사슬(supply chain) 아래 기업들과 계약을 맺을 때, 파견 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안전과 관련한 사항을 의무적으로 포함하도록 원청의 지침을 강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 이것이 제도적으로 정착되도록 해서 하청업체 파견 노동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상윤 대표는 “정부가 원청이 (파견을 포함한)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정책을 펴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단순히 기업의 자율적 책임에 맡길 게 아니라 관련된 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발생한 파견노동자들의 잇따른 메탄올 중독 사고는 정부와 여당이 파견노동 확대 법안을 밀어붙이기에 앞서, 무엇을 먼저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