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이 구타·성폭행…이래도 난민 아닌가요?"

대법원 판결로 난민 확정된 우간다 여성 뎀베 씨

우간다 난민 뎀베 씨의 이야기
나는 아프리카 우간다의 평범한 식당 여종업원이었다. 그날 밤 화재 현장에 가지 않았더라면, 부족의 슬픔을 눈 감고 모르는 척 했더라면 아마 대한민국 땅을 밟지 않았을 것이다. 2010년 3월 16일, 그날의 악몽은 나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텔레비전에서 부간다 왕국의 왕릉이 불길에 휩싸였다는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부간다 왕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 하지만 부간다 왕국에 속한 우리 부족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였다. 잠자코 지켜볼 수만은 없어 서둘러 집을 뛰쳐나왔다.

현장은 아수라장 같았다. 거대한 화마가 선영을 집어삼키는 데도 할 수 있는 일이 우는 것 말고는 없었다. 무기력한 사람들이 땅을 치고 가슴을 쳤다. 화재의 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방화를 의심했다. 부간다 왕국에 적대적인 정부의 소행일 것이라는 심증이었다.

자정이 넘자 군인과 경찰이 최루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해산 명령에 불응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 한국으로 치면 대공분실 같은 안가(세이프 하우스)에 2주 동안 갇혀 있으면서 구타를 당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무장한 사람들이 나를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군 캠프로 옮겼다. 금광을 운영하는 곳이라 했다. 군인들이 시키는 대로 요리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손찌검을 했고, 때로는 나를 범했다. 나는 두 달 내내 두려움과 치욕에 벌벌 떨어야 했다.

축제가 있던 날, 캠프에 끌려왔던 여성·아이들과 함께 극적으로 도망쳤다. 군인들이 술에 진탕 취해 있을 때였다. 담장을 향해 목숨 걸고 뛰어 트럭을 잡아탔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경찰서에 신고한 게 화근이었다. 그저 왜 납치됐는지, 왜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는지 궁금했을 뿐인데, 나는 다시 군인들의 손에 넘겨졌다.

이번에는 세이프 하우스에서만 두 달 넘게 구금됐다. 이 때는 카사바와 바나나를 생산하는 농장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여성으로서의 인권이 또 다시 무참히 짓밟히는 날들이 이어졌다. 가족이 그리웠고, 눈물이 났다.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언제쯤 이 고통이 끝날까.

농장에서 나를 감시하던 군인이 마침 뱀에 물려 옴짝달싹 못 했다. 다행히 탈출에 성공했고, 우간다의 한 마을에서 교회 목사님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목사님은 언제 붙잡힐지 몰라 두려움에 떠는 나에게 난민 신청을 권했다. 목사님을 따라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남장을 한 채 케냐로 넘어가 한국 비자를 받았다. 2011년 10월 9일 한국 땅을 밟았다.

"그게 제가 난민 신청을 한 이유에요" 아무리 설명해도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2013년 2월 결국 난민 불인정 처분이 내려졌다. 이의신청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1심 법원도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법원은 두 차례의 난민면담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고통의 시간을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한 것도 죄인가.


힘겨운 법정 다툼 끝에 2015년 9월 비로소 희망의 볕이 스며들었다. 항소심 재판부가 난민 불인정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판결은 지난 1월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확정됐다.

이제 여기서는 아무도 나를 붙잡아가지 않겠지. 단순히 화재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잡아가서 구타하거나, 고문하거나, 학대하지 않겠지. 끔찍한 기억들을 아스라이 밀어내면서 오랜만에 두 다리를 쭉 뻗었다.

※ 법원 판결을 토대로 1인칭 시점에서 기사를 재구성했습니다.


불타는 부간다 왕릉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우간다 국적의 뎀베(가명·여) 씨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난민 불인정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앞서 서울고법 행정7부(황병하 부장판사)는 "입국한 지 열흘도 안 돼 난민 신청을 했고, 일부 세부적인 진술의 불일치만으로는 전체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여전히 박해 가능성이 있어 난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뎀베 씨처럼 행정소송을 통해 난민으로 인정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문 편이다. 난민인권센터가 법무부에 정보공개청구한 자료에 따르면 소송을 통해 난민으로 인정 받은 경우는 2006년 1건을 시작으로 해마다 10건 안팎에 머물렀다. 지난해 난민 신청을 한 외국인은 모두 5711명이었다.

법무부 난민심사의 벽을 넘지 못한 난민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법원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에서 진행되는 난민소송은 법무부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고 난민의 주장에 대해서는 진술 불일치를 이유로 기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뎀베 씨의 1심을 맡았던 재판부는 "2차 면담 진술이 1차 때보다 더 구체적이어서 원고의 주장을 선뜻 믿기 어렵고, 일부 진술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난민법에 정통한 한 판사는 "인권침해가 맞는지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그런 판단조차 내리지 않은 채 단순히 일부 진술이 불일치한다는 이유로 기각하는 등 성의 없는 재판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이 난민 요건을 제한적으로 해석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1심 재판부는 "뎀베 씨가 반정부 모임이나 단체에서 활동하거나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고, 우간다 정부에 적대적인 활동을 한 사실이 없다"며 박해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난민인권센터 김성인 사무국장은 "정치적 박해라고 한다면 거창한 인물이나 주동자를 떠올리겠지만, 실제로 난민신청국에서는 평범한 시민들이 박해를 당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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