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알파고는 왜 이 9단을 대결 상대로 택했을까. 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맹성렬 교수에게 물었다. 맹 교수는 전기전자·재료과학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SCI(과학기술인용색인) 급 논문 50여 편을 발표하고 국제특허 30여 건을 출원한 명망 있는 과학자다. 그는 인터넷 바둑 1단인 바둑 애호가이기도 하다.
맹 교수는 4일 CBS노컷뉴스에 "기존 컴퓨터의 알고리즘(문제 해결을 위해 정해진 일련의 절차·방법)을 보면 이진법으로 일일이 더해서 계산하는 단선적인 방식인데, 이런 수준으로는 지능적이고 복잡한 연산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알파고는 그 한계를 극복하고 복잡한 여러 연산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특화된 알고리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기나 체스의 경우 말들이 이동하는 경우의 수가 제한돼 있다보니 어느 정도 학습을 시키면 사람이 질 수밖에 없다"며 "사람보다 빠르게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한 뒤 짧은 시간 안에 결론을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체스의 경우 지난 1997년 러시아의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가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와의 대결에서 패한 바 있다. 하지만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까운 바둑은 인공지능이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분야로 남아 있다.
맹 교수는 "경우의 수가 장기, 체스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바둑에서는 치밀하고 빠른 연산 외에도 문제 해결에 필요한 사람의 직관과 통찰력이 승부에 큰 역할을 한다"며 "지금까지는 컴퓨터가 사람의 직관과 통찰을 흉내낼 수 없다고 봤는데, 알파고의 경우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그런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 "알파고, 인간과 비슷하게 사고하고 판단하는 AI 만들려는 노력"
맹 교수는 "양적인 수치로서 성능을 단순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는데, 각각의 컴퓨터 알고리즘이 어느 분야에 맞춤형으로 돼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기상 관측에 쓰이는 슈퍼컴퓨터가 기상을 예측하는 데 최적화 돼 있는 것처럼, 알파고는 바둑이 지닌 복잡한 경우의 수를 단순화한 뒤 해석하고, 상대의 급소가 어디인지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특화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맞대결에 대해 "아직까지는 이 9단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본다"는 의견을 냈다. "인공지능의 수준이 아직 바둑에서 사람을 이길 정도까지는 올라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맹 교수는 "최정상에 있는 프로기사들에게 있어서 수읽기(바둑돌 놓을 좋은 자리를 미리 생각하는 일) 능력이 비슷하다고 봤을 때, 이 9단은 보다 짧은 시간 안에 직관적으로 수읽기를 하는 모습"이라며 "바둑을 두다 보면 판 전체가 얽혀서 바둑돌 하나로 인해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데, 이 9단은 이런 점을 감각적으로 파악해 이길 판은 이기고 질 판도 뒤집는 식으로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나간다"고 전했다.
이어 "알파고에게 진 판후이 2단의 경우 이 9단과 대결한다면 두세 점 접바둑(실력 차이가 있는 사람끼리 바둑을 둘 때 하수가 바둑돌 몇 개를 미리 놓고 두는 바둑)을 둬야 하는 수준으로 최정상급은 아니라고 본다"며 "알파고 측이 '이 9단에 대한 맞춤형 학습을 알파고에게 시키지 않겠다'고 한 것으로 아는데, 그런 상황이라면 더욱 이 9단에게 유리하다"고 전망했다.
바둑에 최적화 된 AI 알파고는 왜 만들어졌을까.
맹 교수는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면 컴퓨터가 스스로 판단해서 전략적으로 사고하지 않느냐"며 "바둑처럼 복잡한 경우의 수를 예측하면 무인차량이 자동주행할 때 돌발상황이 벌어져도 사고가 나지 않도록 대처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결국 "인간과 비슷한 사고, 판단을 하는 AI를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는 "컴퓨터가 바둑으로 사람을 이기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약간의 두려움까지 드는데, 사실 이런 시대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며 "인간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는 느낌인데, 저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좀 더 창의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