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김 대표가 연일 박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권력자' 발언을 쏟아내면서 당청(與靑) 간 갈등 기류까지 생겨날 조짐이다.
김 대표는 정부·여당이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경제·노동 쟁점법안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국회선진화법 때문이고, 박 대통령이 바로 국회선진화법 통과를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 2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중장기 경제 아젠다 전략회의'에서 국회 선진화법과 관련 "우리 당 거의 많은 의원들이 반대했는데, 당시 권력자가 찬성으로 돌자 반대하던 의원이 전부 다 찬성으로 돌아버렸다"며 입법 과정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천권을 쥐고 있는 권력자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정치적 철학과 소신을 내세우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권력자는 누가 봐도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 대통령을 지칭하는 것이다.
배경은 이렇다. 새누리당은 지난 2012년 19대 총선 전 전당대회 돈살포 사건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사건 등 악재가 거듭되며 과반의석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했고, 이것이 국회 선진화법에 불을 지핀 이유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19대 총선에서 과반 달성에 성공하자 새누리당은 돌연 태도를 바꿨다. 박 대통령은 총선 직후인 그해 4월 23일 "법안의 취지는 의미가 있지만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후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박 대통령은 이틀 뒤 "18대 국회가 끝나기 전 다시 한 번 본회의를 소집해 국회 선진화법이 꼭 처리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박 대통령은 일주일 뒤인 5월 2일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국회 선진화법 통과에 힘을 실었고, 결국 본회의에서 찬성 127인·반대 48인·기권 17인으로 법은 국회 문턱을 넘었다.
한 재선 의원은 당시 의원총회 분위기에 대해 "의원들 대부분이 국회 선진화법에 반대했지만, 박 대통령의 '찬성표를 던져 달라'는 말에 친박계 의원들의 기류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당시 법안 통과에 찬성한 친박계 의원들은 박 대통령을 비롯해 구상찬·김성조·김태원·서병수·서상기·손범규·안홍준·유일호·유재중·유정복·이정현·이주영·이진복·이학재·조원진·허태열·현기환·황우여 등 20여 명이 훌쩍 넘었다.
이 같은 배경에서 김 대표는 '망국법'으로 규정한 국회선진화법 통과에 박 대통령과 친박계에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작심 발언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친박계 의원들은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의원들과 야당 의원들이 입법을 주도한 것이라며 "김 대표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발하고 있다.
국회 선진화법 통과에 찬성한 의원들 가운데 55명이 19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야당 의원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친박계 의원인 김성동·김영선·박보환·윤상현·이경재·이성헌·황진하 등 10여 명은 반대를, 김을동·송영선·유기준·이한성·이해봉·정희수·최경환 등 10여 명은 기권했기 때문에 국회 선진화법 통과의 책임을 박 대통령과 친박계에 전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신박(新朴)으로 분류되는 원유철 원내대표가 27일 최고·중진연석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최경환·윤상현·유기준·이경재 의원 등으로 볼 때 친박계가 모두 찬성했다는 것이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친박계 핵심 관계자는 공천받기 위한 찬성이라는 김 대표의 주장에 대해 "찬성표를 던진 의원 55명이 이미 낙선한 사람들인데 공천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김 대표가 사실관계를 완전히 잘못 알고 있다"고 말했다.
◇ 김무성 연일 '권력자' 비판…靑·친박 '부글부글'
이런 가운데 김무성 대표는 또 다시 '권력자'라는 표현을 써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대표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2030 공천설명회'에서 "과거에는 공천권이 당의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좌지우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인재들이 정치를 하고 싶어도 구태 정치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뜻 나서지 못하고 '능력과 열정보다 권력자에게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얘기에 용기를 못 냈을 것"이라고도 했다.
'과거'라고 일반적인 표현을 사용하긴 했지만, 김 대표가 지적한 것은 18대, 19대 총선 공천을 주도한 옛 친이계와 친박계 지도부로 해석된다.
김 대표에겐 두 차례 모두 낙천의 쓴 잔을 마셨던 아픈 기억이다. 특히 지난 19대 총선 당시 지도부는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던 박 대통령이었다.
김 대표의 발언이 전해지자 친박계의 반응도 점차 험악해지는 분위기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공식 대응은 자제하고 있지만,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선 "(김 대표가) 최고존엄을 건드렸다"는 반응이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