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로 무장한 블록버스터 영화들 이전, 서부극은 명실상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장르였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 황량한 미국 서부에서 벌어지는 남성들의 결투는 전 세계를 열광케 했다.
처음에 원주민을 비롯한 타 인종을 '미개한 적'으로 내세웠던 서부극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이 같은 지점을 반성하고, 수정주의 서부극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타 인종을 배척한 백인 이주민들의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으로 다가간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헤이트풀8'과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 '레버넌트')는 이런 수정주의 서부극의 명맥을 이은 작품들이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두 거장들은 영화를 통해 미국에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 갈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설원 위 압도적인 영상미가 돋보이는 '레버넌트'는 백인 모피 사냥꾼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의 복수기를 그렸다. 쉬지 않고 원테이크로 이어지는 장면 하나 하나는 그의 처절한 생존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재현한다. 그러나 이 놀라운 현실감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 서부 개척 시대, 백인들이 원주민 앞에서 드러낸 야만성이다.
휴 글래스는 백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그 중간 지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이주민인 그는 포니 족인 아내와 결혼하고 아들을 낳지만 미군의 공격으로 마을 사람들이 몰살 당하면서 아내를 잃는다. 모든 복수가 시작되는 아들의 죽음도 예외는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온 또 다른 모피 사냥꾼 존 피츠 제럴드(톰 하디 분)는 혼혈인 휴 글래스의 아들을 두고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원주민에 의해 머리 가죽이 벗겨질 뻔한 경험을 가진 그는 원주민을 '짐승'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다쳐서 움직이지 못하는 휴 글래스를 생매장 하는 과정에서 그 아들을 죽이고 만다.
영화에는 휴 글래스의 이야기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들을 잃은 휴 글래스와 끊임없이 교차되는 한 인물은 바로 백인들에게 딸을 빼앗긴 원주민 전사다. 그는 무리를 이끌고 백인 상인들에게 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사냥꾼들을 뒤쫓는다. 간신히 가죽과 말을 교환해 딸의 흔적을 따라가지만 그 딸은 백인 상인들 사이에서 '사람'이 아닌 '노리개'로 취급 받고 있다. "너희는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는 그의 대사는 영화에 뿌리 깊이 남는다.
생존 과정에서 휴 글래스는 끊임없이 아내와 아들을 그리며 기운을 되찾아 간다. 정복자들의 야만성과 대비되는 원주민들의 인간적이고 지혜로운 이야기들을 떠올리고 되새기는 것이다. 슬프고도 환상적인 이미지는 그의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그대로 보여준다.
죽은 아내와 아들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했다면, 우연히 만난 떠돌이 원주민은 또 한 번 그를 죽음에서 구해주는 은인이다. 눈보라 치는 날 밤, 상처가 깊어 정신을 잃은 휴 글래스는 함께 동행하던 이 원주민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그는 휴 글래스를 두고 먼저 떠나는 길에 백인 무리를 만나 죽임을 당한다. 그들은 원주민의 시체를 나무에 매단 채, '나는 짐승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진 팻말을 목에 걸어 둔다.
이 모든 상황이 가리키고 있는 지점은 하나다. 복수를 위한 휴 글래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 새 인종 갈등의 역사를 발견한다. 백인을 믿지 못하는 원주민들과 원주민을 '짐승'처럼 취급하는 백인들. 삶의 방식이 다를 뿐인데도 이들은 서로를 향한 혐오와 증오 그리고 공포를 지우지 못한다. 공존은 실패로 돌아가고, 서부 개척 백인들의 무의미한 원주민 학살은 계속된다.
'헤이트풀8'은 좀 더 노골적으로 인종 갈등을 직시한다. 영화의 배경은 '흑인 노예 해방'을 두고 미국이 남과 북으로 갈려 격렬하게 싸운 직후다.
독특하게 '장'을 나눈 이 영화는 의문의 사건들을 먼저 보여주고 내레이션과 함께 과거로 돌아가 그 내막을 밝힌다. 여덟 명은 눈보라 치는 날, 각자 다른 목적으로 '미니의 양품점'에 도착하고, 의심과 배신 그리고 살육이 난무하는 밤이 깊어 간다.
등장인물 중 유일한 흑인은 현상금 사냥꾼(사무엘 L. 잭슨 분)이다. 그는 언제나 링컨 대통령에게 직접 받은 편지를 품에 간직하고 다닌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 장교로 활약했던 그는 이 여정에서 자신을 적대시하는 과거 남부 연합군 장교, 보안관이 된 남부 가문의 청년, 여죄수 등을 만난다.
'헤이트풀8'은 어떤 이미지나 상징으로 인종 갈등을 논하지 않는다. 피부색으로 흑인을 비하하는 모욕적인 언사는 기본, 이에 맞선 현상금 사냥꾼의 잔인한 '총질'은 옵션이다. 그러면서도 다분히 오락적인 폭력 속에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이 현상금 사냥꾼을 살육의 중심에 세운다. 그는 전혀 백인들에게 짓눌리거나 하지 않고, 심지어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기 힘든 이야기로 남부 연합군 장교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 인간을 노예로 삼았던 남부인들의 얼굴이 찌푸려질 때, 야릇한 쾌감과 통쾌함이 피어난다.
영화의 압권은 내내 갈등하고 대립하던 보안관과 현상금 사냥꾼이 폭력 한가운데에서 서로 손을 잡는 장면이다. 이들은 합의 하에 여죄수를 벌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이미 링컨 대통령의 편지가 가짜인 것이 밝혀진 상황에서 보안관은 현상금 사냥꾼에게 편지를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 나서야 그들은 고집스러운 적대심과 허울 좋은 대의명분을 버리고 이야기를 나눈다. 왜 이런 가짜 편지를 품고 다닐 수밖에 없었는지 묻는 보안관의 질문에 현상금 사냥꾼은 답한다. 이 땅에서 흑인인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노라고. 그를 '인간'으로 살아남도록 지켜온 방패막이는 총도 칼도 아닌 링컨 대통령의 가짜 편지 한 통이었다.
결국 '레버넌트'의 복수와 '헤이트풀8'의 살육 뒤에는 여전히 차별과 갈등을 일삼는 우리들을 향한 붉은 경고장이 감춰져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