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관' 같은 원룸"…청년 주거 절망과 희망

[신간] '청년, 난민 되다'…선택하고 바꿀 수 있는 '주거는 곧 정치'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스물네 살 배태웅 씨는 어김없이 매일 자정 즈음에야 집 앞 골목길에 들어선다. 근처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고 또래의 아르바이트생이 지키고 있는 편의점에만 불이 들어와 있다. 고개를 떨어뜨린 그의 목을 비추는 가로등이 유난히 밝아 보인다. 배태웅 씨가 사는 곳은 '원룸형 하숙' 3층이다. 이미 신발장은 다른 자취생들이 차지한 상태라, 신발을 벗어 복도 구석자리에 밀어넣는다. 오후 다섯 시에 수업을 마치고, 학교 근처 카페에서 마감 때까지 일하고 집에 오면 벌써 열두 시다. 그때부터 노트북을 펼치고 과제를 시작한다. 학교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늘도 밤을 새워야 겨우 과제를 제출할 수 있을 것이다." - 신간 '청년 난민 되다' 중에서

집은커녕 방 한 칸조차 버거운 세대, 우리 시대 청년들의 자화상이다. 집을 잃은 청년들은 어떻게 나라를 포기하고 미래를 포기하는가. 신간 '청년, 난민 되다'(지은이 미스핏츠·펴낸곳 코난북스)에는 타이페이, 홍콩, 도쿄, 서울에서 만난 현재 청춘들의 고단한 삶이 오롯이 녹아 있다.

이 책은 20대 독립 언론 미스핏츠가 직접 겪고 듣고 만난 동아시아 청년 주거의 절망과 희망에 관한 기록이다. 매매를 선호해 집 임대를 꺼리는 타이베이, 10년 동안 공공주택에 청년 세대는 단 한 명도 입주하지 못한 홍콩, 낮아지는 노동의 질과 '블랙기업'의 횡포 탓에 도시에 사는 게 무리인 도쿄…. 미스핏츠가 동아시아 청년들의 주거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분명하다.


"나는 가끔 한국이 진짜 이상한 사회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불행 배틀'이 너무나 빈번한 사회, 주거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면 얼마나 힘든지 증명하라고 하고, 건물주가 되라고 대꾸하는 사회. '내가 월세 30에 학자금 빚을 지고 생활비 반을 월세로 털어넣고 있다'고 하면 '나는 그보다 더 힘들게 살았다'고 덩달아 아우성치는 사회.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실패한다. 우리는 '잘 견디자'고 외치는 게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지금 이곳에서, 각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정말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다른 삶은 어떻게 가능한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22쪽)

◇ "트렁크 가방 한 개 안에 모든 생활을 담아야 한다"

청년, 난민 되다ㅣ미스핏츠ㅣ코난북스
한국 사회의 청년 주거, 그중 서울의 대학생이 처한 주거 현실은 잔인하다.

#1. 전국 대학생(219만 명) 중 약 40%(88만 5000여 명)가 출신지와 다른 지역에서 대학에 다닌다. 그중 기숙사 수용 인원은 35만 7000명, 서울 소재 대학 기숙사 수용률은 10,4%에 불과하다.

#2. 전 연령대에 걸쳐 서울을 떠나는 인구가 많은 것과 달리, 유일하게 유입 인구가 많은 연령대가 20대다.

#3. 서울의 주거 빈곤(주택법에 규정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에 사는 상태)인 청년은 2010년 기준으로 52만여 명, 전체의 22.9%다.

미스핏츠가 타이베이, 홍콩, 도쿄에서 만난 청년들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 사회 청년들이 '탈조선'을 꿈꾸는 것처럼 홍콩의 청년들도 '탈홍콩'을 동경하고 있었다. 일본의 경우도 소득 200만 엔 이하 청년의 77%가 부모에게 '기생'하면서 활력을 잃고 있었다. 더욱이 동아시아 국가 정부들은 집을 사라고 부추기고, 소유자 위주의 부동산 정책을 입안하고, 삶의 기반을 무시한 채 청년 주거 문제에 접근하고 있었다.

"'마구토(マクド) 난민'은 24시간 운영하는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새벽을 떠도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곳에 살려면 언제든 떠돌 것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트렁크 가방 한 개 안에 모든 생활을 담아야 한다." (138쪽)

동아시아 청년 세대가 처한 문제의 공통분모가 있다면 해결의 실마리도 함께 얻을 수 있으리라. 이 책은 타이베이의 '새둥지운동', 홍콩 청년들이 '우산혁명' 당시 함께 제기한 청년 주거 문제, 일본의 자생적 셰어하우스 등을 소개하면서 희망의 불씨를 살린다. 새로운 방식의 주거 운동을 벌이는 총학생회, 청년단체, 사회주택협동조합 등 한국에서 벌어지는 운도을 통해 대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있다. 바로 '주거는 곧 정치'라는 것이다.

"'흙수저 게임'이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이 보드게임은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플레이어'와 '흙수저 물고 태어난 플레이어'를 가정하고 시작한다. 금수저가 기본으로 가진 아이템은 집 세 채와 유동자산 칩이다. 두 채는 임대 수입을 얻는 수단이다. 흙수저는 초기에 유동자산 칩만 가지고 시작한다. 게임하면서 자기 차례가 돌아올 때마다 각 플레이어는 매달 칩으로 월세를 내고, 월세를 받고, 대학에 갈지 말지, 취업을 할지 말지 선택해야 한다. 일종의 '인생 게임'이다. 이 게임은 얼핏 보면 금수저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흙수저의 '좌절'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 턴마다 흙수저와 금수저가 자신들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고, 그에 따라 이 모든 선택의 질서를 바꾸는 데 있다. 이것이 이 게임의 핵심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바꿀 수 있다. 게임의 법칙 자체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다."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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