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원 뇌물공여자 대놓고 봐준 檢, '플리바게닝' 띄우기?

(사진=자료사진)
검찰이 야당의원 3명에게 뇌물을 준 김민성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SAC) 이사장을 뒤늦게 기소하면서 수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뇌물 공여 혐의를 뺀 것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이 기소 독점 권한을 이용해 법에도 없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검찰이 가벼운 범죄로 기소하거나 형량을 낮춰 주는 제도)식 협상을 노골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수사력이 약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검찰이 자백을 용이하게 받아내기 위해 플리바게닝 이슈를 의도적으로 띄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 야당의원 세 명 불었던 김민성 이사장, 결국 뇌물공여는 봐주기

김민성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이사장이 수십억원대 교비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것은 지난 2014년 6월.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임관혁 부장검사)가 학교를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탤런트 출신 김민성 이사장의 이름이 알려졌다.

초반에는 평생교육진흥원과 학교의 유착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이른바 '교피아'(교육계 마피아) 척결 테마로 수사로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런데 김 이사장이 검찰에 몇차례 소환되는 과정에서 사건의 성격은 확 바뀌었다.

신계륜(4선), 김재윤(3선), 신학용(3선). 구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중진 국회의원들의 이름이 김 이사장의 입에서 줄줄이 나온 것이다. 김 이사장은 세 의원에게 '직업'자를 학교 이름에서 뺄 수 있게 법을 통과시켜달라는 대가로 수천만원씩을 건넸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김 이사장의 횡령 및 교피아 수사가 야당 의원들의 '입법로비' 수사로 순식간에 전환됐다.

검찰은 김 이사장의 진술을 토대로 세 의원에 대한 수사를 일사천리로 진행했고, 두 달여만에 김재윤 의원을 구속 상태로, 신계륜 신학용 의원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입법로비 수사가 마무리된 뒤에도 검찰은 김 이사장에 대한 기소를 차일피일 미뤘다. 김 이사장에게는 횡령 혐의에 더해 의원들에게 접근해 뇌물을 제공한 혐의가 있었지만 검찰은 세 의원의 재판을 염두해서인지 기소를 늦췄다.

그리고 의원들의 1심 재판이 마무리된 지난해 12월, 검찰은 1년 반 만에 뇌물공여는 빼고 교비 횡령 혐의만을 적용해 김 이사장을 불구속 상태로 기소했다. 뇌물을 받은 세 의원들 모두 1심에서 징역형을 면치 못했지만 뇌물을 준 김 이사장은 검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죄를 감면받은 것이다. 검찰에 기소독점 권한이 있는데다, 형법상 자수·자복에 대한 감면 규정도 있기 때문에 검찰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민성 이사장 (사진=자료사진)
◇ "거악척결 위해 어쩔수 없다"…檢 플리바게닝 띄우기?

사실 검찰이 수사에 협조한 뇌물 공여자의 혐의를 빼주는 경우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종종 있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2차 수사때 건설업자 한만호 씨에게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한 전 총리를 기소하면서, 정작 한만호 씨는 수사에 협조했다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과거 이같은 관행을 쉬쉬하며 감추려 했던데 반해, 검찰이 이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검찰은 야당이 걸린 민감한 사건인 만큼 김 이사장에 대한 처리을 놓고 오랜기간 고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뇌물공여죄를 포함해 기소해야한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야당 의원들의 뇌물공여자를 봐주는 결정을 내린 것은 검찰이 최근 '플리바게닝' 정식 도입의 필요성을 자주 언급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검찰 관계자는 "특수수사 환경이 열악해지고, 뇌물사건이나 정치자금법 같은 경우에는 공여자의 진술을 받아내기가 갈수록 어려운 상황에서 부정부패를 적발하기 위해 이같은 수사기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플리바게닝도 형사소송법에 정식 도입돼야 한다고 본다"고 소신을 밝혔다.

또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는 "국회의원의 경우 신분이나 권력상 절대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공여자를 기소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거악(巨惡)'척결을 위해 진술을 받기 위한 측면이다. 비슷한 시기 철도 비리로 기소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뇌물 공여자들도 자발적인 진술을 한 경우 공여죄는 기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野는 부글부글…법조계 "표적수사 남용될까 우려"

야당은 겉으로 액션은 자제했지만 속으로는 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법률 자문을 맡은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뇌물을 준 김 이사장을 봐줬다는 것은 플리바게닝을 한 것을 인정한 꼴"이라며 "검찰이 법에도 허용되지 않은 플리바게닝을 통해 야당 의원들을 표적수사한 것이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1심에서 징역형을 받고, 20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신학용 의원도 CBS와의 통화에서 착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신 의원은 "검찰은 국회의원 비리 적발의 대의를 위해 공여자와 '딜'을 했다고 할테지만,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억울한 표적수사의 '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이같은 검찰의 과감한 행보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의 한 현직 판사는 "검찰이 기소독점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전형적인 부작용의 사례이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일종의 '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에서도 뇌물 수사에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정치권의 경우 플리바게닝식 협상을 통해 얼마든지 표적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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