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협상 타결 후 서방의 친이란에 위기감도
종파간 타협 필요한 중동 현안 해결 어려워져
사우디아라비아가 내우외환을 탈출해 보려는 강력한 승부수를 던지면서 중동 전체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사우디는 지난 2일 테러혐의 사형수 47명의 형을 집행하면서 반정부 시아파 유력인사 4명을 포함했다. 국제사회의 만류와 시아파 맹주 이란의 수차례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형집행 강행이었다.
사우디는 이들 시아파 사형수에 외부세력과 결탁해 국가 안보를 해하려 했다는 테러 혐의를 적용해 이란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란의 반발은 불 보듯 뻔했다.
사형 집행 발표가 난 당일 밤 성난 이란 시위대는 테헤란과 제2도시 마슈하드에 주재하는 사우디 외교공관으로 몰려가 돌을 던지고 불을 질렀다.
흡사 이슬람혁명이 일어난 1979년 주테헤란 미국 대사관 공격이 재현되는 듯한 장면이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에 맞서 중동 수니파 진영의 사우디 지지 선언으로 결속을 확인한 사우디는 3일 밤 외무장관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란과 외교관계 단절을 전격 선언했다.
사우디의 신속하면서도 예상보다 수위가 높은 강공에 나선 것은 사우디가 직면한 위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가 군사 개입한 예멘 내전이 10개월째 접어들면서 장기화하는 데다 시리아 내전 역시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종교적 권위를 바탕으로 한 사우디의 역내 정치적 리더십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화수분 같았던 사우디의 오일머니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불안요소다.
유가 급락과 내전 개입 비용으로 사우디는 국민에게 지급하던 보조금을 축소할 만큼 정부 재정에 경고등이 켜졌다.
이란의 핵협상 타결도 사우디의 입지를 좁혔다.
이란은 사우디의 전통적 우방 미국, 유럽과 핵협상을 성사시키면서 중동의 무게중심이 사우디에서 이란으로 급격히 넘어가고 있다.
더는 이란의 위협을 지렛대로 사우디가 서방과 특수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런 외부상황과 맞물린 왕가 내부의 불안정도 사우디가 강수를 둔 배경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즉위한 살만 사우디 국왕의 건강이상설이 끊이지 않는데다 아들인 '실세' 모하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제2왕위계승자 겸 국방장관이 주도한 예멘 내전은 수렁에 빠졌다.
서방 언론에선 살만 국왕 즉위 1년 동안 쿠데타설까지 종종 제기됐다.
사우디 정부는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승부수가 필요했고, 군사적 방법을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는 시아파 처형과 이란과 외교관계 단절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해석된다.
반정부 시아파 인사 처형으로 국내 왕권 도전세력에 본보기를 보이는 동시에, 이란과 분명한 선을 재확인함으로써 수니파 진영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서방의 이란 친화적 변화에도 경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처럼 이란과 정치적 타협보다는 압도적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결을 택한 것은 살만 국왕 즉위 이후 '조용한 사우디'에서 '강한 사우디'로 대외 정책의 색깔을 바꾼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사우디가 '선명성'을 다지는 대가는 중동 정세의 경색이다.
중동 각국은 외교관계가 끊어진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됐다.
그만큼 종파간 타협과 협력이 필요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사태, 테러리즘 소탕, 크고 작은 내전·분쟁의 해결이 어렵게 된 것이다.
이 가운데 중동 최대 현안인 테러리즘 문제는 최대 난제가 될 공산이 커졌다.
이번 시아파 처형을 놓고 사우디가 이란이 상대방을 향해 '테러리즘의 배후'라고 지목하면서 극한 불신을 표출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