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집단처형에 수니-시아파 갈등 격화…이란서 대사관 방화(종합)

미국·EU·독일 등 서방 사우디 우방들도 우려 표명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지도자가 포함된 테러 혐의자 47명을 집단 처형하고 이에 시아파가 반발하면서 해묵은 이슬람 내 수니파와 시아파 간 종파 갈등에 다시 불이 붙었다.

현지 ISNA 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 있는 사우디 대사관이 성난 이란인들의 공격을 받았다.

테헤란에서 사우디의 집단 처형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던 군중이 사우디 대사관을 공격하면서 건물에 불이 났으며 건물 일부가 파손됐다.

이란 제2도시 마슈하드의 사우디 총영사관 앞에서도 이란 시위대가 총영사관에 돌과 불붙은 물건을 던지고 사우디 국기를 찢었다.

이란 정부는 주테헤란 사우디 대사대리를 불러 처형에 강력하게 항의했으며 이에 사우디는 주사우디 이란 대사에게 "내정 간섭하지 말라"며 맞섰다.

사우디는 이날 시아파 지도자 셰이크 님르 바크르 알님르를 포함해 테러 혐의로 사형이 선고된 피고인 47명의 형을 집행했다.

사우디는 지난해 개혁을 요구하거나 부패를 폭로하는 등 반(反) 정부적 행동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 테러범으로 처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테러 방지 명목으로 만들었다.

처형된 47명 중 알님르를 포함한 4명은 시아파였다. 알님르는 이슬람 수니파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 내에서 인구의 15%에 불과한 소수 시아파 권익 보장 운동을 해오다가 체포됐다.

이에 시아파 본산인 이란은 격하게 반응했다.

이란은 중동 지역 헤게모니를 놓고 사우디와 사사건건 대립해온 앙숙이다.


양쪽은 수년째 이어진 예멘과 시리아 내전에서 각 자국의 입맛에 맞는 상대 측을 지원해 결과적으로 내전을 부추겼다.

이란이 지난해 중순 서방과 역사적인 핵협상을 타결할 때 사우디는 타결 이후 서방의 대(對) 이란 제재가 해제되면 이란의 운신 폭이 넓어질 것을 우려해 협상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 발흥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에 맞서 사우디와 이란이 '화해 모드'에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번 처형과 대사관 공격으로 모두 물거품이 될 위기다.

이란뿐 아니라 주변 시아파 국가나 조직의 분위기도 심상찮다.

시아파 정부가 통치하는 이라크는 지난해 25년 만에 사우디와 상대 수도에 대사관을 개설했지만, 대사관을 다시 폐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토 내에서 IS와 전투를 치르는 이라크는 사우디가 같은 종파인 IS를 적극적으로 상대하지 않는다는 의구심을 없애지 못하고 있다.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조직 헤즈볼라는 성명을 발표해 "알님르 처형은 암살이자 추악한 범죄"라며 "사우디 체제를 보호하는 미국과 그 동맹들도 여기에 도덕적이고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싸잡아 비난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서방 국가들은 일제히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 국무부 존 커비 대변인은 이날 "종파 갈등이 감소해야 할 시기임에도 알님르 처형으로 갈등이 악화할 수 있음을 특히 우려한다"며 "사우디는 긴장 완화를 위해 모든 공동체 지도자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알님르 처형은 이미 중동 전체에 큰 피해를 입힌 종파 갈등을 더욱 키우고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독일 외무부도 "중동의 커지는 갈등과 깊어지는 균열에 대한 우리의 우려가 더욱 강해졌다"고 사우디의 처형 강행에 유감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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