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클래식계에서는 정 예술감독과 같은 세계 정상급 지휘자를 상임지휘자로 영입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서울시향의 연주력에 악영향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 예술감독의 음악성과 명성, 네트워크 등에 힘입어 서울시향에 합류한 핵심 연주자들이 이탈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음악 칼럼니스트 황장원 씨는 "정 감독이 오면서 영입한 악장을 비롯한 간판 연주자들이 정 감독을 따라 그만둘 가능성이 있는데 이 경우 악단이 금방 무너질 수 있다"며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이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잘 설득하는 일"이라고 진단했다.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 트럼펫 수석 알렉상드르 바티, 수석 팀파니스트 아드리앙 페뤼송만해도 정 예술감독이 2000년부터 15년간 예술감독으로 몸담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서울시향 수석을 겸하고 있는 연주자들이다.
이달 말로 계약기간이 끝나는 정 예술감독이 당초 예정된 내년 공연마저 지휘하지 않기로 하면서 당장 내달부터 시작되는 예술감독 공백을 메우는 일도 과제다.
그러나 클래식계에서는 정 예술감독 수준의 지휘자의 경우 비용 측면에서만도 영입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후순위 지휘자군도 고려할 수 있으나 유럽이 주무대인 이들이 연고도 없고 클래식 음악의 저변이 넓지도, 처우가 파격적이지도 않은 한국에서 예술감독을 맡으려 할지는 미지수다.
음악 평론가 최은규 씨는 "오케스트라는 단원 개개인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안정감을 주는 구심점과 팀워크가 중요한데 정 감독의 사임으로 갑자기 와해된 느낌"이라며 "빨리 그 공백을 메워야 하는데 좋은 사람을 단기간에 구하기 쉽지 않고 서둘렀다가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시향은 후임 지휘자 선임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고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동요하는 단원들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서울시향이 정 예술감독의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추후 정 예술감독을 명예지휘자로 위촉하는 등의 방식으로 그가 그간 이룬 업적에 대한 예우를 표할 필요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2005년 1일 서울시향 재단법인 출범과 함께 예술고문으로 영입된 정 예술감독은 2006년 1월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이후 아시아 변방의 지방 오케스트라에 불과했던 서울시향을 아시아 정상급으로 키워낸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정 예술감독은 취임과 함께 단원 오디션 등을 통해 실력있는 연주자들을 선발하고 향상된 연주력을 바탕으로 레퍼토리를 확장해 서울시향을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단적으로 초대권을 뿌려도 관객들이 찾지 않던 악단에서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수준 높은 연주를 들을 수 있어 매진이 잇따르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악단으로 변모했다.
실제로 법인화 이전과 비교하면 공연 횟수는 한해 평균 50회에서 120회로 2배 이상 증가했고 총관람객 수는 5배 이상 늘었다. 정기공연 유로 관람객의 비율도 38.9%에서 지난해 92.9%까지 급증했다.
서울시향의 높아진 연주력과 인기는 티켓 판매 수입과 협찬, 후원수입 증대로 이어졌다.
국제적 위상도 달라졌다.
작년에는 영국의 세계적 클래식 음악축제 BBC 프롬스 등 유럽 4개국 주요 음악축제 초청 연주로 호평받았다. 올해는 상임작곡가 진은숙 협주곡 음반으로 '국제클래식음악상(ICMA)'을 받은 데 이어 한국 오케스트라, 아시아 작곡가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BBC 뮤직 매거진상'을 받기도 했다.
황장원 씨는 "정 감독이 오고나서 나타난 서울시향의 변화는 상전벽해"라며 "아무나 할 수 없는 기적같은 일이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