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의 권위가 무너지면 대통령이나 국민이 국회를 우습게 봐도 할 말이 없고, 결국 3권분립은 위기를 맞게 된다.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이 지금 마음속에 떠올릴 4글자는 바로 ‘자격미달’ 아닐까?
오는 31일까지 국회가 국회의원 선거구를 획정하지 못하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는 현행 선거구가 모두 무효가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선거구 인구편차를 2대1로 맞추라는 헌법의 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에 선거구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지난 27일의 여야 지도부 회동이 결렬된데 이어 29일 여야 원내수석부대표 회동도 성과없이 끝났다. 이날 회동에서는 쟁점법안 처리를 위한 31일 본회의 소집 문제 조차도 합의하지 못했다.
헌재가 입법에 필요한 시간을 1년 2개월이나 줬지만 결국 시한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쯤되면 여야 정치권이 입법 비상사태를 스스로 막을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31일까지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안을 합의하지 못할 경우 내년 1월1일 0시부터 입법비상사태라고 밝혔다.
선거구획정 만큼 국회의원의 밥그릇에 민감한 현안이 있을까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도농간 인구구조가 급속히 변화하면서 농어촌 의원들의 반발도 있고, 비례대표제도 개선을 놓고는 여야간 주판알 튕기기가 한창이다. 이런 점을 우려해 우리는 일찍이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보다 큰 틀의 선거제도 변화를 주문했건만 세월만 보낸 게 정치권이다.
막판까지 몰린 정치권에는 이제 선택지가 별로 없다. 대전제는 입법공백사태는 결단코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말까지 선거구 획정을 절충하지 못한다면 국회의장이 공언한대로 직권상정은 어쩔수 없는 코스다. 이는 여야가 스스로 자초한 만큼 정 의장이 제시할 중재안을 상정해 처리하는 게 수순이다.
특히 선거구획정 지연의 결과로 내년 총선 이후 예비후보들이 줄소송에 나선다면 정치권은 이런 사태를 어찌 감당할텐가. 국회의원들은 선거구획정이 늦어지더라도 의정보고나 국회 의정활동의 형식으로 얼마든지 자신을 알릴 수 있기 때문에 정치신인과 현역의원간에는 선거운동에서 당연히 유불리 문제가 발생한다.
법 공백사태를 초래하고 정치신인과의 불평등을 초래한다면 이는 당연히 의원직 박탈감이다. 여야 정치권은 입법부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연내 대타협을 모색해야 하고, 국회의 수장인 정의화 의장도 최악의 사태에 직면한다면 스스로 천명한대로 소신을 지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