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성수기 극장가를 달굴 영화 '대호'와 '히말라야'가 오늘(16일) 그 베일을 벗었다. 비슷한 시기 개봉해 관객들을 사로잡을 영화이기 때문일까. 이들 영화 사이에는 어딘지 모르게 '닮은 꼴'이 보인다.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산'이다. '대호'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수 분)은 한평생 산을 떠나지 않는 이고, '히말라야'의 엄홍길(황정민 분) 대장 역시 인생에서 '산'을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천만덕의 한 많은 이야기와 엄홍길 대장의 애절한 사연은 모두 산 속에서 펼쳐진다. 천만덕은 산과 함께 공생 하는 삶을 꿈꾸지만 그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조선 호랑이를 손에 넣기 위한 일본 관리와 포수대들의 과욕은 천만덕의 숨통을 죄어 오고, 그가 아끼던 삶의 터전을 모두 파괴한다.
엄홍길 대장은 평생 자신을 '받아준' 산 속에서 소중한 후배를 잃고, 휴먼원정대를 꾸려 불가능한 여정을 떠난다. 신체적인 어려움에도 불구, 엄 대장은 이후에도 산을 떠나지 않고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에 오른다.
이들이 산을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다. 무궁무진한 생명들이 태어나고, 또 생을 마감하는 그곳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나 다름없다. "산군님들은 건드리는 게 아니여"라는 천만덕의 경고와 "우리가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 우리를 받아 준 것"이라는 엄 대장의 충고에서는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이 묻어 난다.
살을 에는 혹독한 겨울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의 색채를 만든다.
'히말라야'의 겨울은 죽음과 동시에 한계를 극복한 기적을 의미한다. 엄 대장이 맺은 인연은 모두 겨울에 만나고, 겨울에 이별했다. 그는 박무택(정우 분)을 포함한 후배들과 몇 번이고 히말라야의 겨울에서 살아 남으며 따뜻한 추억을 쌓는다. 그러나 비극적 사고가 일어나게 되고, 엄 대장은 오직 떠난 이들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생명을 담보할 수 없는 '겨울산'으로 떠난다.
반대로 '대호'의 겨울은 비장미를 절정으로 치닫게 하는 계절이다. 일본군들과 포수대는 겨울이 오기 전에 '대호'를 잡으려고 하다, 산을 파괴하고 눈 위에 피를 뿌린다. 채워지지 않는 욕심은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먹고 자라난다. 폭설이 내리기 시작한 지리산에서 천만덕은 죄악감도, 증오도, 사랑도 산 속에 묻어둔 채 대호를 만나러 길을 나선다. 천만덕이 맨 손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지리산의 절벽을 기어 올라갈 때 이야기도 동시에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인간'은 두 영화의 서사를 관통하고 있다. '대호'도, '히말라야'도 그 중심에는 인간애가 우뚝 서 있기 때문이다.
'대호' 천만덕은 세상의 전부인 아들 석이 그리고 포수꾼으로 살아가다 인연을 맺은 대호와 두 줄기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똑같이 아버지인 대호와 천만덕이 묘하게 겹쳐지는 이 과정에서 우리는 냉엄한 현실에 짓밟혀 사라져가는 인간적 가치들을 만날 수 있다.
'히말라야'는 좀 더 직접적으로 이 같은 가치를 조명한다. 사람이 사람과 인연을 맺고, 그 사람을 위해 죽음까지 불사한 산행을 결심한다는 것. 엄 대장은 끝내 그 정(情)을 져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런 보상조차 없는 막막한 여정을 선택한다. 실화라는 점이 거기에 아픔과 따뜻함을 더한다.
그래서 '대호'의 배경은 일제시대이지만 '항일 영화'가 아니고, '히말라야'의 배경은 에베레스트지만 '산악 영화'가 아니다. 극적인 배경은 개연성을 확보하지만, 두 영화는 최종적으로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강한 드라마 안에 담아내 '인간다움'을 추구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