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정과 함께 거시정책의 한축인 물가정책에 대해 분명한 목표와 함께 책임을 부여한 것.
물가상승률 목표치는 현행(2013~2015)의 범위(2.5~3.5%) 방식이 아니라 2%로 특정했다. 그리고 6개월 이상 연속해서 ±0.5%포인트를 초과 이탈하면 한국은행 총재가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그 이유와 대책을 설명하도록 한 것이다.
한은 역사상 물가안정목표를 지키지 못한데 대해 책임을 묻도록 규정한 경우는 처음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계속 ±0.5%를 초과 이탈하면 3개월 마다 설명을 다시 하도록 했다.
실제 이 상황이 발생한다면 경기예측과 통화정책 실패로 비춰지며 중앙은행 총재의 신뢰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당장 내년부터 한은의 통화정책은 물가목표 달성에 무게중심이 옮겨갈 수밖에 없다.
올해 물가가 1%를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은은 물가상승률를 끌어올려야 하고, 이를 위해 한은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기준금리인하 카드밖에 없다. 결국 기준금리 인하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 배경에 대해 한은은 통화정책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시장과의 소통을 더욱 활발히 하겠다는 이주열 총재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는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시각이 많다.
올 들어 물가상승률은 1% 아래에서 머물렀다. 물가안정목표 하한인 2.5%에 크게 못 미치면서 디플레이션(경기부진 속 물가하락) 논란까지 일었지만 물가당국인 한은은 국제유가 하락 등 공급요인 탓으로만 돌릴 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문제제기가 정부쪽에서 많았다. 경기 부진과 저물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날 기재부가 발표한 '2016년 경제전망'에서도 그 일단이 드러났다.
기재부는 체감 경기를 중시하는 거시정책을 운용하겠다며 실질성장률과 함께 경상성장률을 관리지표로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경상성장률은 실질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것으로, 기재부가 이를 거시정책 운용의 관리지표로 삼겠다고 밝힌 것은 처음이다.
중앙은행의 핵심 역할인 물가정책에 기재부가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이 때문에 법으로 보장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물가안정 목표의 책임성을 규정한 부분도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에 비해 매우 엄격하다.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한 32개 국가 가운데 목표치 이탈 시 중앙은행에 설명 책임을 지운 나라는 영국, 이스라엘 등 6개국 뿐이다. 허용폭도 대부분의 국가가 ±1%지만 우리나라는 ±0.5%로 훨씬 더 엄격하다.
여기에 국회에 제출하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도 현행 연 2회에서 4회로 늘리고, 국회가 요구하면 총재가 출석해 답변하도록 했다. 목표치 이탈에 따른 한은의 책임을 이중 삼중으로 묻게한 것이다.
또한 기준물가를 근원물가가 아닌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한은으로서는 부담이다. 소비자물가는 통화정책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원자재 가격 등이 그대로 반영된다. 따라서 최근과 같이 저유가 등에 의한 저물가 상황에서는 통화당국이 물가를 올리기 위해 정책으로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다.
정부가 성장률 목표를 정하고,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중앙은행도 물가목표를 정해 책임을 지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물가에 대응하는 정책수단이 통화정책에 제한된 중앙은행으로서는 물가목표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다른 다양한 경제 변수를 놓치게 되면서 통화정책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당장 정부의 경기부양 요구에 끌려갈 유인이 높아진 점은 우리 경제에 부작용을 키울 개연성이 커졌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