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여야의 버티기가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현행 246개 선거구가 모두 무효화되고 예비후보들의 제한된 선거운동조차도 근거가 사라지고 만다. 이는 사실상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혼란이 입법부에서 벌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선거구 인구편차를 올 연말까지 2대1로 맞추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맞춰 정치권이 보완작업을 수행해야 하는데 여야 정치권이 농어촌 인구감소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둘러싼 유불리를 앞세워 한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는 바람에 선거 전반에 차질이 예상된다.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예비후보자 등록은 15일 시작됐다. 예비후보로 등록한 출마예정자들은 선거사무실을 내거나 간판이나 현수막, 명함, 어깨띠, 전화나 문자 등을 통한 최소한도의 선거운동도 할 수 있게 된다. 후원회를 설립해 1억 5천만원까지 후원금도 모을 수 있다.
그런데 선거구획정이 늦어지면 어떻게 될까?
현역의원과 달리 정치신인들은 예비후보등록을 통해 자신을 알릴 수밖에 없는데 등록이 취소되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선거를 치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역의원들은 의정보고서나 민원의 날 등을 이용해 유권자들과 긴밀히 접촉할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통폐합 거론지역인 서울 중구에서 도전장을 내민 한 예비후보는 선거구획정 지연과 관련해 “시험범위도 모르고 선거를 치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통폐합이나 분구 대상 지역에선 선거구가 어떻게 조정되고 어떻게 공중분해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제대로된 선거전략을 세우는 게 불가능하다.
이런 파행이 내년초까지도 이어진다면 일부러 의도하지는 않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정치신인이나 원외 인사들의 손발을 묶는 것이어서 총선 직후 선거무효소송 등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를 갖는 것은 출마자의 기본권에 해당하는데 선거구를 획정하지 않으면 이런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총선 이후 탈락한 신인들의 줄소송이 이어지면 정치권엔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여야는 예비후보등록이 시작된 15일 정의화 국회의장 주재 하에 각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막판 타결을 시도했으나 아직까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선거구획정이라는게 해당 지역 정치인이나 각 정당의 이해관계에 매우 민감한 작업이라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아무리 중차대한 현안이라도 주어진 시간내에 결론을 내는게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다.
조폭의 세계라면 아마도 주먹의 세기로 결정할 것이다. 군사독재라면 총칼이 결정할 것이다.
‘법을 어기는 입법부’는 존재의 모순이다. 법치의 근간을 흔들고 선거라는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일을 입법부가 스스로 저지를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대의민주주의를 자부한다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빌릴 것도 없이 원칙과 상식, 타협의 정신에 입각해 빠른 시일내에 협상을 마무리해야 하는게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