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특별기구 위원장에 측근으로 분류되는 황진하 사무총장을 임명하기로 했지만, 핵심사안 중 하나인 결선투표제에 대해선 김 대표가 양보를 한 것이 패착 아니냐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 공천 특별기구의 손익계산
김 대표는 '정치생명을 걸고 관철시키겠다'던 오픈프라이머리와 여야 대표 담판의 산물인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친박의 반발로 좌절된 데 이어, 또다시 친박의 요구를 들어줬다.
특별기구 위원장을 자기 사람으로 앉혀 논의의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됐지만 의결권을 가진 최고위원회의는 친박계가 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다른 프리미엄이 될 수 없어 보인다.
한 비박계 관계자는 "하나 얻고 하나 내줬다고 하는데, 김 대표가 사실상 다 내준 것"이라며 "특별기구에서 결론을 내도 최고위에서 뒤집으면 그만이다. 결국 최고위에서 공천룰을 틀어쥐고 가겠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또다른 합의사항인 경선의 대의원 구성 비율 조정 문제도 전리품으로 내세우기는 미흡해보인다. 친박계가 당헌·당규 규정대로 '국민 대 당원' 비율을 50:50으로 고집하는 외견과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60:40 정도를 수용 가능 선으로 잡아놓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선 1, 2위간에 1대1 대결 구도를 만들어주는 결선투표 도입에 동의해준 것은 친박에게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내준 패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별기구에서 1차 전선이 될 '결선투표'의 성립 조건을 놓고 김 대표 측은 '1, 2위 득표율 차이가 오차범위 내에 들어올 때', 친박은 '1위가 50%를 넘지 못할 경우'로 맞서고 있다.
만약 친박 안이 채택될 경우 아무리 현역이라도 50% 득표를 넘기는 것은 쉽지 않은 만큼 '현역 대 신인 또는 진박(진실한 박근혜 사람)'의 결선투표가 상당수의 지역구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굳이 전략공천의 손을 빌리지 않더라도 TK‧강남 물갈이가 가능하다.
한 중진의원은 "'비(非)과반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현역의 절반은 물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향식 공천의 틀 안에서 현역 의원들을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들로 교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 더 큰 산 '현역 컷오프'·'전략공천'
김 대표가 결선투표 승부에서 승리할 수도 있다. 친박이 장악한 최고위에 맞서 김 대표가 기댈 곳은 당내 현역 의원들의 여론인데, 이는 김 대표 쪽으로 기울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 측의 '오차범위 안' 정도면 현역들이 결선투표를 거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힘의 균형을 지켜보던 오픈프라이머리 공방 당시와는 달리 정치생명과 직결되는 일인 만큼 현역들의 지원 강도도 달라질 전망이다.
결선투표의 직격탄을 맞게 될 대구지역의 한 비박계 의원은 "차라리 전략공천을 하자고 하라"면서 "결선투표제는 1등을 떨어뜨리기 위한 음모다. 의원총회로 넘어오면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현역들의 지지에 힘입어 '오차범위 결선투표'를 쟁취한다 해도 그 뒤에는 진짜 승부가 기다리고 있다. 현역 의원들의 일정 비율을 공천 탈락시키는 '현역 컷오프(Cut-off)'와 '전략공천'이다.
'비과반 결선투표'를 관철시키지 못할 경우 친박은 바로 컷오프와 전략공천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결선투표로 부적합한 현역 의원들을 물갈이할 수 없게 됐으니 컷오프와 전략공천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미 김태호 최고위원은 "컷오프나 전략공천이 배제된 상태에서 공천룰이 논의되면 아마 그들만의 잔치로, 폐쇄정치로 비쳐질 수 있다"며 "기회의 문이 열려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그 필요성을 밝혔다.
'비과반 결선투표'를 내주자니 사실상의 전략공천이 될 수 있고, 막아내면 컷오프‧전략공천 공세가 기다리고 있고, 김 대표에게 결선투표는 '외통수'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김 대표는 벼랑 끝 승부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 비박계 3선 정두언 의원은 "전략공천을 내주는 순간 당 대표직을 내놓아야 한다"고 단언했다. 대권 주자로도 힘이 급속도로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선투표'가 반대로 김 대표의 현역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친박 대항세력을 확고히 다져 '컷오프'‧'전략공천' 싸움까지 끌고 갈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한 비박계 여권 관계자는 "친박이 결선투표를 시작으로 컷오프‧전략공천까지 다 얻어내려는 기류로 읽힌다"면서 "비박으로서는 이 3단계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한 현역이 얼마나 되겠나"라고 친박에 반감을 드러냈다.
수도권의 한 비박계 의원도 "친박이 '비과반 결선투표'를 밀어붙일 경우 영남 친박 살리자고 수도권 비박 다 죽이느냐는 반발이 커질 것"이라며 "구체적인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세력 결집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통수'가 '노림수'가 되는 반전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김 대표는 지난 6일 최고위 만찬회동에서 결선투표를 내주면서도 컷오프와 전략공천에 대해서는 "하려거든 나를 죽이고 하라"고 배수의 진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