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을 가지러 고향에 내려간 날, 아버지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노란 물이 담긴 비닐 팩이 보였다. 전립선 비대증으로 요도가 막혀 호스를 끼워 소변을 배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거추장스럽고 불편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며 어린애처럼 울상이다. 의사는 수술을 권하지 않는다. 약물치료를 받고 다시 예전처럼 소변을 시원하게 볼 수 있게 되기만을 기도할 밖에.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올해 94살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복이 많다. 어머니가 계시기에 독거노인 신세는 면했다. 문제는 두 분 다 고령이다 보니 외출을 할 때면 유모차를 붙들고도 꼬부랑 노인네처럼 걷는다. 걸음걸이도 달팽이만큼 느리다. 둘 다 건강할 때면 그럭저럭 사는 재미가 쏠쏠할 텐데, 갑자기 병이 나거나 아프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읍내 병원까지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야하는데, 그 일이 고역이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하고, 버스에 오르고 내려야 하는 일, 병원까지 인도를 따라 걸어가는 일이 고역이다. 건강한 성인이면 서너 시간 만에 마칠 일이지만, 부모님에게는 하루가 다 간다.
아버지는 옛 일을 물어보기라도 하면 고개를 흔들며 "몰라"하고 성가시다는 듯 말을 끊는다. 아버지와 아들이 마주보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시절은 가버렸다. 기억력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것이다. 어머니는 잔기침이 끊이지 않는데다가 손을 심하게 떨어 국대접을 들면 국물이 넘칠 정도다. 지난 가을에는 어지럼증 때문에 화장실에서 넘어져 앞니가 다 부러지기도 했다.
부모님은 기어이 승용차를 주차해 둔 도로까지 따라 나오려고 한다. 추운데 그냥 집에 계시라고 해도 지팡이를 찾아 짚는다. 겨우 대문 앞에서 작별 인사를 드리고 발길을 돌린다. 뒤돌아서며 손등으로 눈시울을 훔치는 사람은 흰머리가 소복한 팔순의 어머니다. 아버지는 눈만 깜빡거리며 하염없이 바라본다. "아버지 어머니, 다음에 또 올게요!" 라고 말하지만, '다음'이 몇 달 뒤가 될지, 일 년 뒤가 될지 알 수 없다. 트렁크에 감 두 상자를 싣고 고향을 떠나오는 내내 고려장(高麗葬)을 하고 산을 내려온 불효막심한 현행범처럼 뒷목이 당긴다.
그리고 화면이 바뀐다. 갑자기 전해진 부음 소식에 자식들은 검은 양복을 입고 슬픔에 잠겨 아버지 집으로 모여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식탁 위에는 식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초가 켜져 있다. 그때 가만히 주방에서 걸어 나오는 아버지를 보고 모두가 놀란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담담하지만 따뜻한 음성으로 말한다. "내가 달리 어떻게 너희를 다 모을 수 있겠니?" 장면이 바뀌어 온 가족이 모처럼 화목한 식사를 하면서 동영상은 끝난다. 이 영상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3천200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노인의 외로움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나는 언제 다시 고향집에 다니러 가, 고령의 부모님과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갑자기 병이 난 부모님을 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휴가를 내고 내려가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아니면? 한밤중 부음 전화를 받고, 눈물을 훔치며 허둥지둥 심야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