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은 쌀값 폭락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며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쌀이 과잉 생산돼 값이 떨어져도 농민들은 결코 쌀농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누가 뭐라 해도 쌀농사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 쌀값 폭락, 농민단체 불만 고조...“정부, 시장격리용 36만 톤 매입해야”
농민단체들은 쌀값이 폭락한 것은 정부가 밥쌀용 수입쌀을 들여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박형태 정책위원장은 “ WTO(세계무역기구) 규정에 밥쌀용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는데도 정부 스스로가 옭아매가지고 알아서 수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공용까지 포함하면 쌀 소비량이 450만 톤에 달한다”며 “국내에서 생산되는 신곡과 창고에 있는 묵은쌀로도 얼마든지 수급조절이 가능한데도 수입쌀을 수입하면서 국내 쌀시장을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밥쌀용을 포함해 외국산 쌀을 해마다 41만 톤씩 의무적으로 수입하게 된 것은 지난 2004년 우루과이라운드 재협상 과정에서 농민단체들이 ‘관세화’에 반대하면서 의무수입 물량이 늘어난 탓도 있다.
농민단체들은 쌀값 폭락과 관련해 정부가 올해 구매할 계획인 시장격리용 쌀 20만 톤에 추가로 16만 톤을 매입할 것을 요구하며, 오는 5일로 예정된 제2차 민중총궐기 행사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시장격리용 쌀을 추가 매입하는 것은 시장의 가격상황을 봐 가면서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그래도, 쌀농사는 계속 짓는다....농사 편하고, 판로 확보
이처럼 쌀값 폭락의 원인이야 어찌됐든 농민들은 쌀농사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 정책위원장은 “쌀 농업의 경우 기업으로 치면 모기업에 해당 된다”며 “쌀농사가 안정이 되면 다른 농사를 할 수 있지만 쌀농사가 없으면 다른 농사를 하기가 불안하게 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쌀농사를 계속해 지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농촌 인력이 고령화된 상황에서 쌀농사가 밭농사에 비해 쉽기 때문이다. 인건비와 재료비 등 경영비는 적게 들지만 생산성은 높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작목별 10a당 경영비는 쌀이 44만 원으로 보리와 콩, 참깨에 이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시설채소 평균 784만원, 노지과수 185만 원, 노지채소 112만 원 등과 비교해 경영 원가가 적게 든다.
이에 반해 쌀농사의 경우 10a당 순 소득이 61만5천원으로 경영비 대비 140%에 달한다. 노지과수 160%에 비해선 낮지만 노지채소 135%, 일반 식량작물 124%, 시설채소 99%에 비해선 높은 편이다.
여기에 가을에 수확하면 정부와 농협, 민간 RPC 등이 알아서 사주기 때문에 판로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쌀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알아서 지원하는데 이만한 농사가 없다. 비록 쌀값이 하락해 손에 쥐는 목돈은 줄었지만 안정적으로 현금이 들어온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민간 농업연구소 GS&J 관계자는 “쌀농사는 모를 심어놓고 농약 한 두 번 치고, 잡풀만 제거하면 수확하기 때문에 실제 노동력은 20여일에 불과하다”며 “일 년에 20일 일하고 농가당 평균 천만 원이 넘는 소득을 올리는데 포기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