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서거] YS에게 진 민주화 부채…새누리 응답해야

왼쪽부터 故 김영삼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재 (사진=대통령기록관)
"새누리당은 그 사건으로 태동됐어. 우리는 민주세력이 수혈된 민주 보수정당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해"

지난달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여야가 격렬한 공방을 벌이고 있을 당시 한 새누리당 의원이 던진 말이다.

이 의원이 국정화 강행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언급한 '그 사건'은 바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이다.

1990년 3당 합당만큼 놀라움과 충격을 던진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정치사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와 함께 민주화의 양대 산맥이던 YS가 군사정권과 손을 잡는 상상조차 어려운 현실 앞에 엄청난 논란이 뒤따랐다.


1987년 대선에서 DJ와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군사정권을 연명하게 했던 YS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구국의 결단"이라고 외쳤지만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민주 진영을 배신한 야합'이라는 비판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YS는 3당 합당을 발판으로 14대 대통령이 된 이후 '반(反)독재 민주화' 투쟁의 원천이었던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보수 진영에 불어넣었다.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실시, 하나회 척결 등 거침없는 개혁으로 군사정권을 종식시킨 문민정부의 힘을 알렸다.

군사독재라는 딱지가 붙었던 산업화 세력은 YS로 인해 민주화 세력과 합쳐지면서 비로소 보수 세력을 형성할 수 있게 됐다.

새누리당 이종훈 의원은 "3당 합당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도 엇갈리지만 산업화 세력에 민주화 세력이 수혈되면서 이 땅에서 건전한 보수정당이 출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은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은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거쳐 현재의 새누리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진보 진영과 선거를 통해 정권을 주고 받으며 민주적 정권 교체를 이행해오고 있다. '양김(兩金) 시대'를 관통했던 '독재 대 민주'는 '보수 대 진보'로 대체됐다.

하지만 '양김시대'의 부산물인 지역주의와 계파주의는 극복되지 않고 있다. 정권 획득이라는 지상명제 앞에 '지역감정'과 '색깔론'은 지지층 결집을 위한 달콤하고도 손쉬운 수단이 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을 기다려서 진보 진영에서 정권을 탈환한 보수 진영은 왼쪽으로 간 바늘을 오른쪽으로 돌리고자 이념 공세를 강화하고 있고 진보 진영 역시 그 반동으로 더욱 왼쪽으로 치우치는 극단적 대결구도가 점차 고착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높은 반대 여론에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현 정부의 독주와 이를 이념 대결로 지원하는 새누리당의 모습은 야당의 머리 속에서 독재의 망령을 되살려냈다. 민주화 세력이 동참한 보수 세력의 탄생으로 용도폐기된 줄 알았던 시대착오적 '독재 대 민주' 구도가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통상적으로 우리 사회는 수구 우파를 보수로, 수구 좌파를 진보로 부르는 게 현실"이라며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는 권위주의(독재)가 보수를, 친북이 진보를 상징하는 기괴한 나라가 돼버렸다"고 개탄했다.

그런데 YS가 서거했다. 여야 정치권은 앞다퉈 '정치적 아들', '정치적 계승자'를 자처하며 YS 재평가와 YS 유산의 계승을 부르짓고 있다. 하지만 담론은 무성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 속에 진정한 성찰과 고민은 없어 보인다.

YS는 떠나기 전 스스로의 반성에서 나온 '화합과 통합'이라는 과제를 우리에게 남겼다. '대립'과 '분열'을 청산하고 '양김'을 극복하라는 분명한 메시지다.

이는 새누리당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그 존재를 있게 해준 YS에게 부채가 있다. YS가 내준 숙제를 마쳐서 빚을 갚아야 할 책무가 있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YS는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이뤄냈고 고뇌의 결단으로 이땅에 진정한 보수정당을 발아시켰다"면서 "우리는 YS의 유지(遺志)를 이어받아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욱 업그레이드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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