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에게 고하는 '시일야방성대곡'

언론노조 "죽어가는 이 땅의 언론을 반드시 살려내야 합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 언론노조)이 24일 '언론인들에게 고하는 시일야방성대곡'을 발표했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은 ‘이 날, 목 놓아 통곡하노라’라는 뜻으로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에 실린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비판'하는 장자연의 논설이다.

언론노조는 "노동개악, 역사교과서 국정화, 공영방송 장악으로 이어지는 박근혜 정권의 막가파식 질주에 우리 언론이 비판은커녕 굿거리장단을 맞추고 있다"며 "왜곡·편파·불공정의 절정"에 다다른 언론행태에 대해 목 놓아 통곡하고픈 심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언론의 비판 기능은 사라지고 로봇처럼 시키는 대로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다"며 "죽어가는 이 땅의 언론을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고 간곡하게 호소했다.

다음은 언론노조의 성명 전문.

언론노조 김환균 위원장. (언론노조 제공)
언론인들에게 고하는 ‘시일야방성대곡’

요즘 신문을 펼치면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러다 이내 땅이 꺼져라 절망감에 사로잡힙니다.

노동개악, 역사교과서 국정화, 공영방송 장악으로 이어지는 박근혜 정권의 막가파식 질주에 우리 언론은 어떻습니까? 비판은커녕 굿거리장단을 맞추고 있습니다. 노동개악은 ‘노동개혁’으로 치장합니다. 청년 일자리가 늘어나고 비정규직이 사라지며 국가 경쟁력이 커진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아도 비판하지 않습니다. 누구든 ‘저상과자’의 덫을 씌워 언제든 해고시킬 수 있고, 비정규직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며, 임금은 줄어들게 되지만 애써 외면합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보다 더 앞장서 국정화 홍보에 열을 올립니다. 국민 여론이 국정화 반대쪽으로 기울자 이제는 아예 보도를 덮어버립니다. 밤마다 켜지는 광화문 ‘촛불’은 애써 못본 척 합니다. 민초들의 함성에는 귀를 막습니다. 11월3일 ‘확정 고시’ 이후 대다수 언론의 국정화 보도 건수는 확 줄어들었습니다.

왜곡·편파·불공정의 절정은 11월14일 민중총궐기 보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언론의 사명인 최소한의 중립·객관은 내팽개친 채 최소한의 반론조차 허용하지 않습니다. 언론의 눈에는 그저 ‘폭도들의 불법·폭력 시위’일 뿐입니다. 그날 광화문·시청·종로 일대에 운집한 10여만명의 시민들은 ‘폭도’로 둔갑했습니다. 35년 전 광주의 시민들처럼 말입니다.

11월14일, 그날 화면으로는 부족했던지 옛날 장면까지 교묘하게 섞어서 내보냅니다. 물론 ‘자료화면’이라는 자막도 없습니다.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백남기씨의 치명적 부상은 ‘빨간 우비’ 때문이랍니다. 말문이 막히고 어안이 벙벙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은 적반하장식 새누리당 의원들의 주장을 확성기처럼 퍼뜨립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습니다. 경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퍼포먼스용으로 사용했던 해머가 나왔습니다. 앞뒤 자르고 폭력 집단이라며 눈을 부라립니다. 오늘 이 땅의 언론 현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입니다. 그저 목 놓아 통곡하고픈 심정입니다.

우리는 5공화국 시절 ‘땡전 뉴스’를 기억합니다. ‘뚜뚜뚜’ 하고 텔레비전의 시계가 밤 9를 가리키면, 앵커의 입에선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하는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오죽하면 세간에 전두환씨의 호가 ‘뚜뚜뚜’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이순자씨의 호는 ‘한편’이라는 비웃음이 퍼졌을까요. 언로(言路)가 막히면 유언비어가 난무합니다. 소통이 안 되면 동맥경화 현상이 일어납니다. 바로 지금, 이 땅의 언론은 병들고 있습니다. 숨이 막히고 온몸이 굳어 있습니다. 비판 기능은 사라지고 로봇처럼 시키는 대로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언론인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살려내야 합니다. 죽어가는 이 땅의 언론을 반드시 살려내야 합니다. 다시 온몸에 피를 돌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 땅의 언론 자유를, 이 땅의 민주주의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어떻게 쟁취한 언론자유입니까. 간곡히, 간곡히 호소 드립니다.

2015년 11월 2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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