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서거] '오른팔 최형우' YS 영정 앞 통곡한 이유

상도동계 1세대로 불리는 최형우 전 내무장관이 22일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22일 그의 빈소에 격하게 오열하는 한 정치인이 눈에 띄었다. 몸이 불편한 백발의 팔순 노정객(老政客)은 아예 영정 앞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중풍으로 반신불수 상태에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통곡하는 모습은 몹시 처연해 보였다. 그는 바로 YS 옆에서 평생 정치고락을 같이했던 최형우 전 내무장관이었다.

그의 슬픔에는 남모를 깊은 회한이 묻어있다. 그는 YS의 오른팔이라는 뜻으로 '우(右)형우'로 통했다. 왼팔은 역시 오로지 몸 바쳐 충성을 다한 뚝심의 김동영 전 정무장관으로 그는 '좌(左)동영'이 었다.

별명이 '불곰'으로 불렸던 김 전 장관 역시 YS를 최측근에서 도우며 한평생 민주화운동으로 뚜벅뚜벅 한길만 걸었다. 막판까지 YS 대통령 만들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으나 말기 암으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눈을 감았다.

마지막까지 주군에게 본인의 암 투병 사실을 끝까지 숨기는 '충심'으로도 유명했다. 그가 유명을 달리했을 때 최 전 장관은 당시 국회 영결식에서 그의 이름을 외치면서 '나를 두고 먼저 가면 어떡하냐"며 눈물을 뿌렸다.

1993년 3월 3일 김영삼 대통령과 최형우 의원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날 김 대통령은 민자당 당직자에 임명장을 수여했다. 사무총장에 최형우 의원이 임명됐다. (사진=e영상역사관)
두 사람은 DJ의 최측근 양갑(권노갑, 한화갑)과 비견되지만 충성도의 깊이와 색깔은 또 달랐다.

최 전장관이 나중에 반신불수가 된 것과 관련해서는 YS와의 불화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의 절절한 오열 속에는 평생을 따랐던 보스마저 떠나보내며 느끼는 슬픔에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정치 역정까지 오버랩되는 듯 해 보였다.

◇ 큰 산 밑에 거한 숱한 인물들 '생명력'도 길었다

'거산(巨山)'이라는 아호처럼 산그림자 아래에는 많은 이들이 뜨고 졌다.

'YS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나 서청원, 이인제 최고위원 같은 현재진행형의 정치인들 외에 노무현 전 대통령, 손학규 전 대표도 YS가 정치입문시켰고 이명박 대통령도 사실상 YS 그늘 밑에 있었다.

김덕룡 전 정무장관, 고 서석재 전 총무처 장관,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강삼재, 이성헌, 박종웅 전 의원, 정병국 의원, 김기수 수행실장 등도 모두 YS의 정치적 자양분을 먹고 자란 한솥밥 '상도동 동지'들이다.

김수한, 김형오, 황낙주 전 국회의장, 문정수 전 부산시장, 김광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병석 의원, 박 진 전 의원도 YS계 '진골' 인사이고 윤여준 전 청와대 수석은 문민정부 최장수 공보수석을 지냈다.

YS는 살아생전 '인사는 만사'라는 말을 가슴판에 새길 정도로 용인술을 중시했다. 잘못된 인사도 적지 않았지만 문제가 생겨 여론이 좋지 않으면 곧바로 해결하는 것도 번개 같았다.

인사발표 최후 순간까지 평판조회에서부터 정밀한 검증단계를 거쳤지만 당사자에게 통보한 뒤 만에 하나 발표 전에 새어 나갔을 경우 막판에 바꿔버린 적도 있다. 인사보안이 지나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만큼 인사의 중요성을 반영한 대목이라는 평이 뒤따랐다.

3당 합당(민정당·민주당·공화당) 당시 최대 계파였던 민정계의 상당수 의원들이 편입돼 소수였던 YS계가 대세가 됐다.

민정계였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당시 민자당 대변인)은 합당 초기 'YS는 머리가 별로…'라며 비아냥대기도 했지만 그가 YS계로 돌아서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YS는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힘 있을때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공직자 재산공개와 같은 굵직한 거사를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임기 중에는 역사바로세우기를 내세워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다.

우회보다 직진을 신념으로 택했던 그는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일갈했고 국립박물관으로 사용하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부숴버렸다.

경제가 최대 약점으로 꼽혔던 YS는 임기 말 IMF 사태라는 정책적 과오로 뼈아픈 대가지불을 톡톡히 했다. 정리해고가 핵심쟁점이었던 노동법 개정안을 1996년 크리스마스 날 새벽에 날치기 처리한 것은 두고두고 치부로 기록됐다.

하지만 이제 거산은 스러졌다. 불과 몇 년 전 불편한 몸으로 서울의 한 대형교회 주일저녁예배에 특별히 참석해 찬송가 '나의 갈길 다가도록'을 끝까지 부르던 모습이 기억난다.

민주화를 이끈 '양김 시대'의 종언을 고하면서 YS는 많은 것을 만들어 놓고 또 '통합과 화합'을 유언하고 떠나갔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기를 바랬던 그가 이제 하늘위로 받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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