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화통신은 우리 시간으로 22일 오전 1시 7분 우리 통신사의 보도를 인용해 '김영삼 전 한국 대통령 서거'라는 짧은 제목으로 첫 기사를 내보냈다.
AP통신은 뒤이어 오전 2시 9분 서울발 기사로 서울대병원의 공식 발표를 인용해 "김영삼 전 한국 대통령이 87세를 일기로 서거했다"는 내용의 단신을 긴급기사로 보도했다.
AP통신은 이어 김 전 대통령의 사인을 전하며 수년간 군사독재에 항거해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고 이양받은 평화적으로 정권을 대통령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AFP통신은 고인의 대통령으로서의 임기가 1994년 북핵위기와 1997년 금융위기로 대표된다고 소개했다. 또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이끈 인물로 가택연금을 당했고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처벌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한국의 개혁가이자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고 보도하며 고인이 20대 후반에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한 뒤 박해를 당하면서도 민주적 개혁을 추진했다고 소개했다.
다만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당시 정치적 경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후보단일화에 실패해 대선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패했으며, 이로 인해 비판도 받았다고 전했다.
일본 언론은 고인의 민주화 운동 이력과 자국과의 인연을 조명했다.
교도통신은 "재임 중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체포를 명하고 1980년 광주사건(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의 진상 규명을 도모하는 등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의 민주화에 큰 족적을 남겼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김 전 대통령이 역사나 영토를 둘러싸고 일본에 강경한 발언을 많이 했으나 2002년에는 와세다대 특명교수로 취임했다고 전했다.
산케이신문은 김 전 대통령 재임 중에 '역사 바로 세우기'의 하나로 서울에 있던 옛 조선총독부 청사가 철거되고 독도에 접안 시설이 건설된 것을 소개했다.
중국 언론들은 금융실명제 도입 등 고인의 반부패 변혁을 높이 평가했다. 중국 신문망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망 등은 김 전 대통령이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으며 금융실명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등을 처음 도입하는 등 반부패의 변혁을 주도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와 방송, 그리고 영국 BBC 등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도했으며 고인의 민주화 역정과 외환위기 등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영욕의 생애를 상세히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