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내년부터 '연매출 2억원 이하' 영세가맹점의 경우 현행 1.5%인 수수료율을 0.8%로, '연매출 2억 원에서 3억 원까지' 중소가맹점은 현행 2%인 수수료율을 1.3%로 인하한다고 2일 밝혔다.
연매출 3억원 이하 가맹점들에 대한 수수료율이 반토막 가까이 일률적으로 인하되는 셈이다.
금융위는 "수수료율 대폭 인하로 영세가맹점은 연간 최대 140만 원, 중소가맹점은 연간 최대 210만 원의 수수료 부담 감소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당초 예상보다 큰 인하폭과 관련해 카드사의 조달금리 인하와 당기순이익 지속 증가 등 인하 여력이 충분하다는 금융당국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 충격의 카드업계, 정부 맘대로 쥐락펴락 관치 논란
금융당국의 전격적인 수수료 인하 방침에 카드사들의 분위기는 흉흉하다.
영세가맹점에 대한 우대수수료율은 카드사들이 업종별로 자유롭게 지정해 왔지만 대형가맹점과 중·소 영세가맹점들에 대한 수수료율 차별 등이 이슈화되면서 2012년 정부가 우대수수료율을 직접 손대기 시작했다.
정부가 영세 가맹점들에 대한 우대수수료율을 통제하면서 수수료율 개편 직전까지 업계 평균 1.8% 였던 우대수수료율은 1.5%로 0.3% 가량 일괄 하락시켰다.
정부는 수수료율 체계를 개편하면서 3년마다 적격비용 심사를 실시해 수수료율을 재산정하도록 했는데 사실상 처음인 이번 수수료율 재산정에서 우대수수료율을 무려 0.7% 포인트를 내리면서 절반 수준으로 떨어트려 놓은 것이다.
두번의 수수료율 산정을 통해 영세가맹점의 경우 3년만에 1%포인트(1.8%→0.8%)가 한꺼번에 하락한 셈이다.
여기에 우대수수료율이 반값 가까이 깎이면서 사실상 카드사에게 '갑'이나 마찬가지인 대형가맹점들의 반발도 고려해야할 부분이다.
캐피탈이나 개인대출등 여신업무가 없고 결제 수수료로 회사를 지탱하는 일부 카드사들의 경우는 충격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런 추세로 가다간 후발 주자나 중·소 카드사들 한두개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과격한 예측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 혜택은 국가가 보고, 부담은 카드사가 지고
현 상황에서 카드사들이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내거나 밴사로 나가는 수수료를 대폭 감축시킨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필연적으로 카드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줄일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로 인해 가뜩이나 왜곡된 우리나라 카드산업 구조가 더욱 꼬이게 됐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수수료율 인하가 가능한 첫번째 조건으로 낮은 조달금리를 꼽았다.
하지만 거꾸로 앞으로 금리가 인상될 경우 우대수수료를 다시 올릴 수 있겠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명쾌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총선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시점에서 금융당국이 수수료 인하를 전격 단행됐다는 점은 경제 논리보다 정치 논리에 기울어진 카드 수수료 문제의 단면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던 여론의 역풍을 감내하고 카드 수수료율을 올리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상황이 됐다.
문제의 근원을 따져보면 카드수수료 문제는 카드사들의 높은 수수료율 보다는 카드사용을 법적으로 강제한 비정상적인 카드사용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상거래에서 소비자들이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거부하거나 현금사용과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법률로 제한하고 있다.
카드사용자 대신 현금을 지급해주는 금융서비스인 신용카드를 현금과 마찬가지로 강제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소소한 소액도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빈도수가 늘어나고 영세 상인이 져야할 카드 수수료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신용카드 사용 1건당 결제금액이 2014년 1월 65153원이던 것이 2015년 1월에는 60291원으로 줄어드는 등 2014년 대비 2015년 건당 결제금액 액수가 대폭 줄어들고 있다.
소액결제가 늘어나는 추세는 수익성 악화 등의 측면에서카드사들도 결코 바라지 않는 현상이다.
결국 일정금액의 소액결제만이라도 카드 사용을 거부하거나 현금결제에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치면 고질적인 영세상인 수수료 문제는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다.
카드사도 가맹점도 원하는 카드 사용 강제 철폐 문제에 대해 정부는 완강히 버티고 있다.
세수확보와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명분을 위해 카드 사용강제 조항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 "아예 카드사를 국가가 인수하던지…"
1만원도 되지 않는 소액결제를 카드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세수 확보에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여전하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다른 나라도 지하경제 양성화 등의 문제가 있는데 왜 우리나라만 신용카드를 강제적으로 사용하게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지급결제 수단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고, 국가가 강제하는 것은 화폐 밖에 없다. 어떤 결제 수단을 사용할지는 소비자와 상인이 선택하는 것이지, 국가나 과세당국이 강제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국가가 책임져야할 세수확보 편의를 위해 사기업인 카드사들이 재정적 부담을 져야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정부가 사기업 서비스의 적정가격을 평가해 책정하고 강제하는 것도 자본주의 기본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정책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가 "차라리 카드사들을 국가가 모두 인수해 버려 공기업화 시키면 속이 편하겠다"고 푸념하는 이유다.
물론 신용카드 사용이 현금사용을 대체할 정도로 빈번해진 우리나라 현실에서 금융당국의 카드사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점에는 대다수 학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적절한 관리·감독을 넘어선 관치가 되고 선거 때마다 수수료율을 둘러싼 포퓰리즘이 반복되면 카드업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