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대표 측은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김용주 전 회장이 1931년 충무공 이순신 유적보존 성금을 기탁하고 일제의 만주사변으로 피해를 입은 동포들을 위해 위로금품을 기탁했다며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인용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충무공유적보존 위한 성금 일금십전야 답지(1931년 6월 21일자 동아일보 6면)'라는 기사와 관련해 "1단 마산 부원정 이주일부터 3단 원태영까지 '170명이 32원 10전 중 송료 5전을 제하고 실입금 32원 5전'이라고 3단에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2단 김용주는 마산부회의원 경력자인 김용주의 행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마산부회의원 김용주는 경남 마산출신으로 1889년생이며 1905년 경남 함양군 함양면 신관리 출신인 김 대표 부친과는 다른 인물"이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또 '재만피란동포 위호금품 일금 삼십전야 답지(1931년 11월 22일자 동아일보 6면)'기사에 대해 "신문에 실린 명단에 경북지역 납부자는 없고, 이 명단에 실린 김용주는 경성지역의 성금 납부자 명단에 기재되어 있다"며 동명이인이라고 반박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또 김 대표 측이 매일신보 기사의 신뢰성을 의심했지만 연구소가 검토한 자료는 매일신보뿐 아니라 '조선총독부 관보', '아사히 신문', '징병제시행감사적미영격멸결의선양전선조선공직자대회기록' 등 다양한 사료에 근거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 측은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매일신보 등을 인용해 부친의 친일행적을 제기하는데 대해 "당사자 동의가 없는 강제성 기고나 허위사실 기사화에 대한 기록과 증언이 다수 존재해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용주가 교육사업에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애국적 활동을 적극 선전하고 있지만 김용주는 1937년 도의회 의원에 선출된 이후 '내선일체의 정신적 심도를 높일 것', '국체명징' 등 황국신민화 교육의 핵심을 적극 선전하는 발언을 거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김용주가 청년기에는 다소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기도 했지만 1940년대 들어서는 일제의 징병제를 찬양하거나 전투기 헌납운동을 제일 앞장서서 주도하는 등 특급 친일활동을 펴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만으로도 김용주의 친일행적은 명확하다"며 "연구소가 개인에 대한 추적은 하지 않지만 김무성 대표가 부친의 친일활동을 애국활동으로 광고하고 있는 만큼 친일인명사전에 등록시킬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