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2일 양국 정상회담을 갖자는 한국 측 제의에 일본 정부 대변인은 27일 짐짓 '모르쇠' 태도를 취했고 우리 정부는 "그럴 리가?" 하는 식으로 눙치며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갈등의 핵심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양국 정상이 어느 선까지 합의를 이뤄낼 것인가 하는 사전 조율에 있다.
정부는 일본의 확실한 반성과 사죄를 요구하는 반면 일본은 전제조건 없는 회담을 주장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양측 입장 차가 워낙 크다보니 정상회담 성사 자체가 불투명할 뿐 아니라 설령 성사가 돼도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정상회담 무산되면 朴 임기내 관계 정상화 '물거품'
박근혜 정부 출범 2년 8개월이 지나도록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는 가운데 이번에도 불발된다면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양국관계는 오히려 더 후퇴할 것으로 우려된다.
더구나 3국 정상회의 주최국으로서 손님을 초대해놓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만 회담을 하고 아베 총리는 외면하는 것은 상징적 효과 측면에서도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혐의가 짙은 '중국 경사론'이 다시 되살아날 수 있고, 한미일 3국 공조 강화를 요구하는 미국에도 부정적 인상을 줄 수 있다.
양국간 최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 해결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한일관계 정상화는 사실상 박 대통령 임기 내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성공회대 양기호 교수(일본학과)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시간의 제약이 있다"며 "그 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누구에게 사죄하고 보상할 것이고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면서 "이번에 안 하면 이번 정권에선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 회담 열려도 걱정…'회담 위한 회담' 日 면피용 우려
일본 측 요구대로 조건 없는 회담에 응했다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아니함만 못한 회담'이라는 거센 역풍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반면 주변국과의 관계 악화로 비판을 받아온 아베 정권에는 '면죄부'를 줌과 동시에, 이를 고리로 걸어뒀던 위안부 문제 해결의 지렛대까지 상실할 수 있다.
정부는 대일 '투 트랙' 외교 전략을 펴면서도 위안부 문제만큼은 원칙을 중시해왔는데 명분과 실리를 한꺼번에 잃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양국 회담이 열리게 되면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이란 휘발성 높은 사안까지 얹혀지면서 결과를 더욱 낙관할 수 없게 된다.
◇ '약식 회담'으로 성격 규정해 기대치 낮출 필요
다수 전문가들은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양국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먼저 한일정상회담은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약식 회담으로 성격을 규정하고 무리하게 합의를 도출하려다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정식 회담을 하기에는 위안부 문제 등 여건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다"며 "약식 회담으로 규정하면 부담이 줄어들 수 있고, 스스로 눈높이를 낮출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최국으로서 아베 일본 총리에게 '외면 악수'라는 결례를 하긴 했지만 양국정상회담에는 응하는 유연함을 보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번에 한일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기존 국장급 협의를 차관급 협의 정도로 격상하는 등의 합의도 나름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한 전문가는 "중요한 것은 한일 간에 계속해서 협의를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