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박 대통령, 국론을 '강제'로 통합하려나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앞으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통해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정통성을 심어줄 수 있도록…(이하 생략)"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국정화의 당위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국정화를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의지가 넘치는 표현이다.

하지만 국정 교과서가 나오면 분열된 국론이 통합될 수 있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 추진하면서 국론이 메마른 논바닥처럼 쫙 갈라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학계와 시민단체 심지어 고등학생들까지 나서서 국정화에 반대하며 촛불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더군다나 박 대통령의 이른바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나오면 교육 현장의 갈등도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지역 교육감과 학계에선 국정교과서에 대항해 별도의 '대안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국정 교과서가 어떤 내용을 담을지 단정할수는 없지만, 학생들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다르게 다루는 국정교과서와 대안교과서로 공부해야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국정화 추진에 등 돌린 민심에도 아랑곳없이 국정교과서로 국론을 통합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얕잡아 보는 게 아닌지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 국정 교과서로 국론을 통합하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만약 국론이 통합된다면 '강제 통합'일 수 밖에 없다.

'국론통합'을 위해 국론을 분열시켜가면서까지 국정화를 추진하려는 현 상황을 보면 박 대통령의 의지는 거의 강박증에 가깝다.


그리고 맹목적이다시피 한 국론통합의 의지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빼 닮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9년 지금의 통일부 전신인 국토통일원을 출범시키면서 남북 통일이 아닌 "국론통일에 힘쓰라"고 지시했다.

현행 역사교과서에 반영돼 있는 근현대사는 역사학계가 이뤄낸 오랜 연구의 성과물인데도 이를 뒤집으려 하니 국정화를 강행하더라도 정권이 바뀌면 어차피 또 바뀔 수 밖에 없다는 조롱이 역사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정부청사 브리핑룸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긴급브리핑을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국정화의 깃발을 들고 '나만 따르라'고 하니 추진주체 내부에서도 각종 무리수가 나오고 있다.

여론수렴 과정은 일체 생략됐고,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비선조직같은 TF를 만들어 청와대에 직보를 해오다 논란을 빚고 있고, 급기야는 국정화 추진에 소극적이라며 김재춘 교육부 차관 교체에 이어 황우여 교육부장관 경질설까지 나오고 있다.

무리수를 두다보니 국정화 추진의 논리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도 납득할 이유를 대지는 못한 채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추상적인 말만 되풀이했다.

이미 박 대통령은 구체적인 사실관계에서도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다.

지난 22일 청와대 5자회동에서는 "6.25전쟁에 대해 남과 북 공동의 책임을 저술한 내용을 (교과서에서) 봤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이미 확인된 것이다.

현행 8종 고교 교과서 어디에도 남북 공동책임론을 담은 책은 없다.

또 "책을 읽어보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끔, 우리 역사는 부끄러운 역사인 것으로 기술돼 있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며 뜬구름 잡는 대답을 내놨다.

나라에 대한 자긍심은 역사교과서를 고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청년실업, 빈부격차, 갑질문화, 복지빈곤 등 산적한 현안들이 해소돼야 '헬조선'에서 탈출할 수 있다.

국론통합은 역사교과서를 강제로 고쳐 학생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시킨다고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실을 뒤늦게 깨달을 수록 반작용이 크다는 걸 우리 사회는 익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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