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는 25일 창원 마산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두산과 플레이오프(PO) 5차전에서 4-6 역전패를 안았다. 2승1패로 앞선 가운데 2연패로 시리즈를 내주며 한국시리즈(KS) 진출을 다음으로 미뤘다.
그래도 지난해보다는 한 단계 발전했다. NC는 지난해 정규리그 3위로 준PO에 나섰고, 올해는 2위로 PO에 진출했다. 1군 무대에 합류, 9개 팀 중 7위로 마친 2013년 이후 매년 성적이 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진하게 남는다. NC는 2년 연속 가을야구에서 하위팀에 시리즈를 내줬다. 지난해는 4위 LG에, 올해는 3위 두산에 졌다. 경험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올림픽 9전승 신화…KBO 8번의 좌절
이런 NC의 성장을 이끈 김 감독도 가을야구 끝판에는 이르지 못했다. 김 감독은 두산 시절 6번과 NC 사령탑을 맡은 뒤 2번 가을야구에 나섰으나 KS 정상이 또 다시 무산됐다.
김 감독은 한국 야구 역사에 유일한 올림픽 금메달 사령탑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숙적 일본과 아마 최강 쿠바, 종주국 미국을 꺾고 9전 전승 우승 신화를 썼다. 한국 야구의 숱한 명장들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다.
KBO 리그 최다승과 최다 우승(10회) 김응용 전 한화 감독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사상 첫 메달을 수확했으나 동메달이었다. 김인식 현 KBO 기술위원장 겸 대표팀 감독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과 준우승 신화를 썼지만 우승은 아니었다. 삼성의 4연패를 일군 류중일 감독도 국제대회는 지난해 아시안게임 우승이다. 전 세계 강호들이 참가한 국제대회 정상은 김경문 감독이 유일하다.
2005년 김 감독은 선동열 전 KIA 감독의 투수 왕국 삼성에 막혀 4연패로 혹독한 KS 신고식을 치렀다. 2007년에는 SK와 KS에서 1, 2차전 승리로 우승을 맛보나 싶었으나 내리 4연패했다. 이듬해도 첫 승 이후 역시 4연패로 마감했다. 이후 2009년과 2010년, 올해 모두 PO의 벽을 넘지 못했다.
때문에 김 감독은 KBO 리그에서는 '2인자'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올림픽 우승의 명장이었지만 KBO에서는 아직까지 무관인 김 감독이다.
▲선수 능력 극대화, 대표팀-소속팀은 다르다?
이는 김경문 감독이기에 가능한 현상이라는 의견이다. 세계 최강을 이룬 사령탑이 국내에서는 2인자라는 독특한 괴리감은 김 감독밖에 연출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KBO 리그 준우승도 어렵지만 올림픽 우승은 더 어려워 어쩌면 이런 괴리감은 김 감독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김 감독의 승부사 기질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대목이다. 알려진 대로 김 감독은 선이 굵은 야구를 선호한다. 대체로 선수들을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다. 신뢰로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낸다. 김 감독은 이번 시리즈는 물론 이전에도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급적 맡기고 싶다"는 지론을 밝혀왔다.
대표팀 경력이 전무했던 김현수(두산)가 미국과 본선에서 대타로 나와 천금의 안타를 뽑아냈고, 극도의 부진에 빠졌던 이승엽(삼성)은 마침내 일본과 4강전, 쿠바와 결승전에서 결승 홈런을 뽑아냈다. 지금도 회자되는, 짜릿한 전율이 흐르는 명승부는 김 감독의 뚝심과 과감한 기용이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KBO 리그 소속팀은 조금 다르다. 물론 좋은 선수들이 많고 유망주를 길러내 훌륭한 팀을 만들었지만 '베이징 대표팀'만큼은 아니었다. 선수들을 믿고 맡겨 좋은 성적을 냈지만 승부처에서 당시 대표팀만큼 선수들이 능력을 발휘하기에는 2%가 모자랐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김경문의 야구는 대표급 선수들이 펼친다면 그야말로 꿈의 조합과 최고의 경기력이 나올 수 있다"면서 "그러나 소속팀은 대표팀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김 감독의 이상적인 야구를 구현하기에는 살짝 부족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우승급 전력을 보유하고도 이루지 못한 팀이 많은 KBO 리그에서는 정상에 오르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이다.
▲믿음에 2% 모자랐던 능력
이번 PO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의 뚝심과 승부수는 충분히 빛났다. 1패를 안은 2차전이 대표적이다.
당시 김 감독은 선발 재크 스튜어트를 끝까지 믿고 맡겼다. 2-1로 불안하게 앞선 9회 주자를 내보낸 위기. 일반적이라면 마무리를 투입할 시점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스튜어트에게 경기를 마무리할 기회를 줬고, 선수는 완투승으로 기대에 부응했다.
여기에 김 감독은 앞선 0-1로 뒤진 8회 과감한 작전을 펼쳤다. 무사 1루에서 강공으로 지석훈의 동점 2루타를 이끌어냈고, 이어진 1사 3루에서는 스퀴즈 작전을 냈다. 상대 폭투에 행운의 결승점이 나왔지만 허를 찌른 작전의 승리였다. 베이징올림픽 당시 일본전에서 더블 스틸로 상대 실책을 유발했던 장면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여기서 스튜어트가 위기를 벗어났다면 어땠을까. 또 다른 명승부가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스튜어트는 대표급, 혹은 리그 정상급 에이스는 아니었다. 시즌 중반 대체 선수로 왔던 스튜어트는 2차전에서는 김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으나 끝내 마지막 기대는 채울 수 없었다.
NC는 성장하는 팀이다. 올해가 겨우 KBO 1군 3년째인 막내급이다. 그럼에도 이 정도 성적을 낸 것은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상황이다. 이들과 함께 김 감독도 우승에 다시 도전할 기회가 있다. 그들이 김 감독의 야구에 부응할 수준으로 큰다면 그야말로 거대 공룡이 되는 날이다.
김 감독은 조금 달라졌다. 2007, 08년 아쉽게 KS에서 우승을 내준 뒤 분함과 아쉬움이 서렸던 표정은 사라졌다. 대신 후회없는 명승부를 펼쳤던 NC 선수들을 보듬었고, 승리한 두산 선수들을 칭찬했다.
올림픽 금메달로 휘황했던 김 감독은 KBO 리그의 격을 높이는 '명품 조연'으로도 그 빛을 잃지 않았다. 아등바등 우승 갈급보다 품격 있는 명승부가 빛났다. "내년 아쉬운 부분을 채워서 강팀으로 다시 도전하겠다"는 김 감독의 얼굴은 후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