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백의 맏딸 이혜선 작가는 지난 8월 20일 어머니의 유골함을 품고 어머니의 자식들이 93점이나 숨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했답니다. 상설전시관과 수장고를 돌면서 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또 딸과 함께 유골로 고국에 돌아온 천 화백은 마지막 떠나는 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지난 2003년 작가가 미국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온 이래 12년의 투병생활 동안 한국은 그녀의 죽음이 확실한지 아닌지만 중요했습니다. 아무리 미술계에서 천 화백이 이미 10여 년 전 사망했다는 추측성 소문이 무성했다고 해도 지난해 대한민국예술원이 취한 조치들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예술원은 천 화백의 근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2월부터 수당 지급을 잠정 중단했고 이에 반발해 맏딸은 탈퇴서를 제출했습니다. 예술원은 이씨에게 공문을 보내 천 화백의 의료 기록 등을 요구했으나 이씨는 이런 요구가 천 화백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응하지 않았고, 예술원은 헛되게 세금을 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명분을 얻었는지, 천 화백의 탈퇴 처리를 하지 않았습니다만, 아픈 사람에게 꼭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요?
천경자 화백은 생존 화가 중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았고,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던 작가였습니다. 그런 작가의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이란 곳에서 허락도 받지않고 싸구려 프린트로 복제를 해서 판매를 하고, 작가가 위작이라고 검증을 했음에도 화랑협회와 과학 기술을 내세워서 작가를 ‘제 자식도 몰라보는 미치광이’로 만들어 버린 곳이 바로 한국의 미술계였습니다. 천경자 화백은 <미인도> 위작 파문 이후 나라를 떠나면서 “붓을 들기 두렵습니다.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일갈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녀의 새 그림을 우리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99년에 위조작가의 고백이 나왔는데도 여전히 미술계의 카르텔은 그 작품을 진품이라고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공식사이트에서 소장품 검색을 해 보면 이 작품은 검색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한 위대한 작가에 대해 진실공방으로 죽음으로 몰아가고 그 작가의 후속작을 영원히 잃었지만, 아무도 사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작금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보면 천경자 화백을 죽음으로 몰아간 검은 그림자를 보는 듯 합니다. 가짜를 진짜라고 우기고, 그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억울하게 피해를 입고, 심지어 죽는 사람이 생겨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득을 위해서라면 나라도, 민족도, 위대한 작품도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뭐가 두렵겠습니까? 그들이 공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미인도의 진실이 밝혀지고 천경자 화백의 명예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