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한(40 · NC)은 차분해 보였습니다. 백전노장이 이까짓 일에 동요할까 마치 이런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는 진한 감정이 묻어났습니다. 회한과 안도, 뿌듯함과 희미하지만 절실함까지 섞인 음색이었습니다. 프로 19년차, 첫 가을야구를 한 지 16년 만에 거둔 값진 수확.
손민한은 21일 두산과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플레이오프(PO) 3차전에서 승리 투수가 됐습니다. 5이닝 3피안타 3볼넷 2실점(1자책)의 쾌투로 16-2 대승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오른 중지에 물집이 잡히지만 않았더라도 더 던질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자기 역할은 100% 수행해냈습니다.
특히 역대 포스트시즌(PS) 최고령(40세 9개월 19일) 선발 등판과 승리 투수 기록. 이전 기록은 2006년 10월17일 현대와 PO 4차전에 등판해 승리한 송진우(당시 한화)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의 40세 8개월 1일이었습니다. KBO 리그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여기에 개인 통산 첫 PS 선발승. 한때 '전국구 에이스'로 통했던 손민한임을 감안하면 의외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손민한은 지난 1999년 롯데 시절 이후 16년 동안 PS에서 선발승은 물론 승리조차 인연이 없었습니다. 이전까지 유일했던 승리도 당시 삼성과 PO 4차전 구원승이었죠.
리그를 주름잡던 특급 우완이었지만 가을야구 경험은 많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롯데 암흑기를 보낸 까닭이겠죠. 1997년 데뷔 후 PS 12경기 1승2패 1홀드 평균자책점(ERA) 4.70의 기록. 그나마도 4경기는 지난해 NC에서 뛸 때였습니다. 15시즌을 보낸 롯데 시절은 1999년과 2000년, 2008년 PS에 나선 것이 전부였습니다.
최고령 PS 선발 승리에 대해 "경기 끝나고 들으니 최고령 승리 투수라고 하던데 기쁘죠"라고 말하는 표정에는 쑥스러움이 묻어나는 듯했습니다. "이 나이까지 중요한 경기에 선발 등판하는 거 자체 행복하고 감사한다"며 후련한 얼굴이었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고려대 시절부터 국가대표였던 손민한은 1997년 입단 뒤 2000년부터 롯데 에이스로 우뚝 섰습니다. 2005년에는 PS 진출이 무산된 팀에서 처음으로 정규리그 MVP에 올랐습니다. 18승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ERA) 2.46의 빼어난 성적은 팀 순위를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랬던 손민한이었지만 부침도 심했습니다. MVP 시즌부터 08년까지 4년 동안 53승을 거둔 손민한은 09년 6승5패 ERA 5.19를 찍은 뒤 1군 성적이 없었습니다. 긴 부상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을 맡았던 손민한. 그러나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홍역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2011년을 끝으로 롯데에서 방출된 손민한은 은퇴 기로에 놓였습니다. 부상과 악재, 이런저런 일들로 손민한의 야구 인생은 끝나는 듯했습니다.
올해는 선발로도 뛰면서 이재학 등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웠습니다. 11승 6패 ERA 4.89, 7년 만의 두자릿수 승수를 거뒀습니다. 역시 역대 최고령 기록. 이 정도면 예전 명성 되찾고 불미스러웠던 과거를 씻을 만한 멋진 활약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손민한은 1승1패로 맞선 가장 중요한 PO 3차전에서 역투를 펼쳐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그 노련한 손민한도 "긴장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마음 가졌는데 막상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면서 "1회를 마치고 '왜 이리 긴장을 많이 했느냐' 자책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내년이면 20년차 노장도 떨렸던 겁니다. "1회 스트라이크 존이 옆쪽으로 좁은 것 같았지만 구심도 긴장한 것 같더라"면서 "이후 높낮이로 공략하다 보니 오히려 존이 넓어졌다"는 손민한은 역시 베테랑이었습니다.
1회 고비를 넘기고 승리를 따낸 손민한은 다시 자신을 일어설 수 있게 기회를 준 김경문 NC 감독을 잊지 않았습니다. 3차전 뒤 손민한은 두 번이나 김 감독에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감독도 "올해 NC가 여러 가지로 좋은 기록이 나온다"면서 "우리가 잘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손민한을 비롯한 고참들이 힘을 주고 있다"고 화답했습니다. 이어 "손민한의 기록을 축하한다"고 힘을 실어줬습니다.
손민한은 "정규리그가 끝나고 PO까지 시간이 길다 보니 책임감과 컨디션 조절 등 준비를 하는데 팀 전체가 흔들리는 시기가 있었다"면서 "누가 됐든 집중하는 모습 보여야 하지 않나 싶었고 나도 PO 앞두고 컨디션을 올려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투수조에게 보낸 장문의 문자에 대해서도 "어느 팀 고참이나 마찬가지"라면서 "큰 경기 앞두고 간단하게 투수진 미팅을 할까 했는데 카톡(카카오톡 메신저)이 후배들도 원하지 않겠나 싶어 '지금까지 열심히 했고 남은 경기 부담없이 후회없이 즐기면서 하자'고 보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이제 손민한에게 남은 소원이 있다면 우승 반지입니다. 20년 가까운 프로 생활 중에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우승. MVP급 실력에도 손민한이 '무관의 제왕'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손민한은 "한때는 우승 반지를 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다"고 절실한 감정을 역시 노련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손민한은 "물집은 3~4일이면 충분히 완치될 것"이라면서 "항상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내 역할은 하고 싶다"고 다짐했습니다. 과연 손민한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요? 힘든 과거를 이겨낸 베테랑 투수, 16년 만에 이뤄진 그의 가을걷이는 지금으로도 풍성하지만 더 큰 수확이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러다 선발로 맹활약하던 손민한이 전반기 막판 마무리로 전격 등판한다는 기사를 혼자 쓰고 기뻐했던 기억도 납니다. 아마 기자 생활의 첫 단독 기사였을 겁니다. 그러나 손민한의 불미스러웠던 선수협회장 전후의 시절을 기사로 써야 했던 기억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MVP급 에이스에서 부상으로 신음하던 왕년의 스타, 또 선수들의 권익을 제대로 대표할 수 없었거나 못했던 시절을 다 바라봐야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한 시대를 풍미하다 역경을 딛고 멋지게 재기를 이룬 스타를 기사로 작성하는 것은 기자로서도 뿌듯한 일입니다. 앞으로 손민한이 생애 첫 우승 반지를 끼는 순간을 기사로 남길 수 있을까요?
p.s의 p.s-16년 만의 PS 승리. 16년은 얼마나 오랜 세월일까요? 불현듯 16년이라는 숫자에 어릴 때 읽었던 무협지가 생각났습니다. 중국 대하소설의 대부, 신필(神筆)로 불리는 김용 작가의 '신조협려'입니다. 국내에는 영웅문 3부작 중 두 번째 시리즈인 '영웅의 별'로 소개된 작품입니다.
두 주인공은 양과와 그의 사부이자 아내인 소용녀입니다. 극약에 중독돼 살 가망이 없었던 소용녀는 남편 양과까지 함께 생을 마치려고 치료를 포기하자 홀연히 사라집니다. '16년 뒤에 만나자'는 글만 남긴 채 말입니다. 이에 양과는 치료를 받아 독을 치유한 뒤 16년을 기다립니다. 무협지답게 이후 거짓말처럼 둘은 재회하는데 당시 절벽에서 떨어져 천우신조로 살아난 소용녀는 양과에게 이런 말을 남깁니다.
"16년이면 당신이 나를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살 줄 알았다"는 겁니다. 그만큼 16년의 세월이 길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손민한이 거둔 16년 만의 결실이 값진 게 아닐까요? (물론 신조협려의 16년은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인 곽양이 사춘기에 접어들 때를 위한 인위적 세월이 아닐까 하고 혼자 짐작하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