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지방자치단체들은 취약계층을 상대로 맞춤형 복지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중앙정부가 이런 사업들을 '유사 중복 사업'이라며 줄이거나 없애라고 압박하면서 외려 사각지대를 키우고 있는 것.
실제로 박씨 형제가 살고 있던 서울 마포구는 지난 8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사회보장사업 정비지침'이란 공문을 받았다.
"지자체들이 운영중인 복지제도가 중앙정부의 사업과 비슷하거나 중복되니 축소하거나 중단하라"는 사실상의 '명령'이었다.
마포구에서 '유사 중복사업'으로 지목된 복지제도는 모두 7개. 폐지될 위기에 내몰린 이들 사업 가운데는 중증 장애인 가정을 방문해 목욕을 돕는 '장애인 이동 목욕사업'도 포함돼있다. 박씨 형제도 그 대상자임은 물론이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질병이나 사고로 특별히 더 어려운 사람들의 생계를 돕는 '저소득주민 특별생계보호사업'이나,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사랑의 안심폰사업'까지 박씨 가족 같은 취약계층에겐 너무도 절실한 사업들이다.
'저소득층 방과후학습'이나 '영유아 장난감 대여사업', '경력단절여성 취·창업 지원사업'도 사라질 운명에 놓이긴 마찬가지다.
이처럼 정부가 재정 효율성을 명분으로 없애거나 줄이라고 요구한 유사 중복 사업은 서울시 경우만 해도 124개나 된다.
서울시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대부분의 사업은 독거노인이나 기초수급자, 최저생계비 몇 퍼센트 이내 식으로 대상자가 구분돼있다"며 "국가 사업을 보충하는 사업들인데도 유사중복 리스트에 들어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위기에 몰린 지자체 복지사업은 전국적으로 5891개 가운데 25.4%인 1496개에 이른다. 금액으로는 대략 1조원에 육박하는 사업들이다.
정진엽 장관도 전날 기자들과 만나, 유사 중복 사업 정비에 대해 "복지 축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복지 예산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축소는 전혀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유사 중복 사업 정비'를 통해 취약계층에 예산을 더 투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복지 사각지대를 키우는 건 복지부란 비판이 나온다.
시민단체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지자체 복지 사업은 거의 대부분이 중앙정부의 복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보완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복지들이 없어지면 어려운 취약계층들이 훨씬 더 심각한 위기에 내몰려 사각지대도 더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CBS에 출연한 이재명 성남시장은 "정부는 자기들이 동의 안하는 복지정책을 지자체가 강행하면 그 액수만큼 벌금을 때리는 황당한 법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중앙정부의 산하기관이 아니라 헌법에 정한 독립적 자치기구"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