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귀국한지 이틀 만인 19일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 핵심기술 이전의 무산 책임을 물어 전격 교체했다.
주 수석의 경질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장관 등의 부분 개각과 함께 이뤄졌지만 '꼬리 자르기'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KF-X는 18조원의 사업 규모만 보더라도 외교안보수석 1명이 떠안고 갈 문제가 아니다. 최소한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 등의 책임 규명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김 실장은 KF-X 사업 초기에 국방장관을 역임한 당사자인데다, 지난해 3월에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KF-X 단일후보 기종이던 보잉의 F-15SE를 록히드마틴의 F-35로 변경하는 것을 주도했다.
당시 김 실장은 이미 F-35의 핵심기술 이전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결정을 밀어붙였다는 강한 의혹을 받고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KF-X 사업 부실과 직접 관련돼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 대통령 방미 때 미국 측에 기술 이전을 요청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굴욕 외교'를 자초했다.
한 장관은 19일 국회 국방위에서 "그것(기술 이전)이 제한된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다시 한 번 노력하는 기본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억울한 심경을 내보였지만 책임을 완전히 면키는 힘들 전망이다.
KF-X 사업 부실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오히려 더욱 불거진 외교 난맥상이다.
청와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확인한 것은 물론 미중 사이의 균형외교로 북핵 해결을 위한 외교 공간을 넓혔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실상은 많이 다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맺는 것 사이에 모순이 없다"고 말해 '중국 경사론'을 걱정하는 한국을 배려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국제 규범과 규칙을 지키지 않을 때는 한국도 우리처럼 목소리를 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남중국해 충돌 등 미중 간 경합 상황에선 미국 편에 확실히 줄을 서라고 압박한 셈이다.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것을 우려하는 중국을 염두에 뒀더라면 매우 신중해야 할 발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달 초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 화려한 '천안문 성루 외교'를 펼치며 균형외교의 초석을 닦는 듯 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반 만에, 다시 미국 쪽에 확실히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어렵게 쌓은 공든 탑을 스스로 허물고 말았다.
이런 갈팡질팡 외교 행보 탓에 김관진 실장뿐만 아니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포함한 외교안보팀 전면 개편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윤 장관은 미중 간의 양자택일 양상을 오히려 '축복론'으로 포장하는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비판을 받았고 "한미동맹은 천하무적"이라는 비외교적 언사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와 관련,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 정책위의장은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중국의 대북관계 속에서 길 잃었다"며 "외교안보팀의 창조적 공간 창출 능력이 필요함에도 비전 재설정 주문에 막무가내"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도 이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미정상외교를 총괄 지휘를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외교부 장관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