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장'이라고 하지만 독후감을 내라는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하니, 말 그대로 권장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 같다. 공무원시험에 권장도서를 지문으로 출제하는 방안도 검토중이어서, 정작 공무원보다 공무원 수험생들이 더 바빠지게 생겼다.
권장도서 50권 가운데 자문위원들이 추천한 1위 목록에 '목민심서'가 올랐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시대를 떠나, 올바른 행정의 지침서로 가치를 인정받는 명저(名著)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공직에 있는 사람의 지표를 밝힌 책이니, 현직 공무원들이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라고 생각할 만 일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한다면 과연 목민심서가 공무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권장도서 목록 1위에 오를 책인지 의문스럽다.
'목민심서'는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에 쓰여진 '목민관'의 지침서다. 지방 관아의 수령들의 백성들에 대한 수탈이 극에 달하던 시절, 수령들의 폭정을 비판하면서 지향해 할 방향을 제시한 책이다.
하지만, 조선 말기 지방 수령과 현재의 공무원을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시 지방 수령들은 사법권과 행정권을 동시에 가진 막강한 권력자였다. 적절한 절차 없이 죄가 있다고 판단되면 멋대로 처벌을 할 수 있었고, 재산까지 몰수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목민심서'는 목민관이 권력자라는 것을 전제로 쓰여진 셈이다.
이 책에 담긴 철학은 결국 '권력의 선용(善用)'에 관한 것이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이념을 가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공무원에게 적용할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공직은 '목민관'이 아닌 국민편익을 위해 존재하는 서비스 직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과민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공무원의 '권장도서'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와 맥을 같이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독재와 부패의 역사를 배제한 채, 과거 권력자의 업적을 미화하고 국가에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역사관을 강요하는 국정교과서는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조치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행정권한을 과거 '목민관'처럼 인식하는 것 역시 위험스러운 일이다.
이런 책을 공무원을 하고자 하는 수험생들에게도 읽도록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책 한권으로 공무원의 의식이 바뀌리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현재의 공직 시스템이 그렇게 허술하지도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권력자의 움직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권력자의 생각과 통치이념을 일선에서 실행하는 말초신경이 바로 공무원이다.
그렇다면 '목민심서'에 대한 우려는 정말 허황된 공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