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무성 대표님, 이러시면 안 되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사진=윤창원 기자)
김무성 대표님, 요즘 부쩍 말이 많아진데다 거칠기까지 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90% 말과 10% 행동으로 이뤄진 게 정치라고 하니까 이런저런 사안에 대한 발언이 많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말은 실수를 동반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당 대표로서 발언 하나하나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국가를 흥하게 할 수도, 그르치는 길로 유도할 수도 있기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역사 교과서 국정화 관련 발언을 보시면 표현이 거칩니다. 7일 이대 강연에서 "현재 일부 역사 교과서를 보면 김일성 주체사상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 예가 너무 많습니다. 분단된 우리나라에선 허용돼선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의 90%가 좌파”라고 했습니다.

‘건국’을 ‘정부수립’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쓰지 않고, 김일성이 주도한 보천보 전투를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보다 크게 서술한 것 등에 대한 불만을 이해합니다. 보수적인 시각에서 볼 땐 그럴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역사교과서 필진의 90%가 좌파라는 단정적 표현의 근거는 어디에 나오나요. 혹시 주변 인사들의 의견을 전해들은 것은 아닌지요. 역사학자들은 상당수가 진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의 발전론과 진보론을 연구하고 믿는 사람들이 역사학자들이기 때문이죠.

문제의 역사교과서들을 다 갖다 놓고 붉은색 펜으로 밑줄을 그어 가며 읽어보시고 난 뒤 역사학자들을 좌파로 매도하셨으면 합니다. 역사란 보는 사람의 경험과 성품,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지 않습니까?(E.H 카)

사실 1970~8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독재정권과 일제의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국사교과서로 공부를 한 세대들입니다. 국정교과서로 말이죠. 1970~1980년대 반체제 세대들인 그들이 지금 기성세대가 됐고, 중도 또는 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반면 작금의 20대들은 검정체제로 전환된 이후의 현행 역사책으로 역사 교육을 받았지만 보수적으로 변해 있습니다. 지금 20-30대들은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역사 공부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역설적이지만 과거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운 세대의 역사관이 이후 훨씬 진보적 성향이 됐고 검정교과서 체제에서 역사를 배운 세대는 덜 진보적이라는 얘기죠.

역사적 기술이 조금 치우쳤다고 해서 평생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도, 정치적 시각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역사교육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시대 상황에 따라 보수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진보적으로 달라지기도 하는 게 인간이고 인간세상사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사진=청와대 제공)
대표님께서 독일의 노동개혁을 얘기하면서 독일의 사민당 정권이 노동자들로부터 갖은 욕을 먹어가면서 노동개혁을 하는 바람에 - 결국 기민당으로 정권교체 - 오늘의 독일이 있다고 얘기하셨죠? 그 사민당은 정강정책이 칼 맑스의 자본론을 기초로 하고 있는 정당입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주장처럼 국정교과서를 정상화하더라도 지금처럼 매카시즘적인 분위기로, 진영 대결로 몰고 가선 곤란합니다. 일국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분이 그러시면 아니됩니다. 통합의 정치를 하셔야지, 분열 정치의 끝은 또 다른 분열과 파쟁, 극한 투쟁으로 치닫기 때문입니다. 국민·사회통합으로 가지 않고서 국가를 대개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표님께서 대한민국을 대개조해야 한다는 소신을 입에 달고 살지 않으시는지요.

노동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발언은 제발 자제했으면 합니다. 저희 세대들은 양극단(꼴 보수와 꼴 진보 세력 간)의 편가르기와 너죽고 나살기식의 대결정치에 신물이 납니다. 분단도 서러운데 지역과 이념으로, 계층으로 찢기고 갈린 대한민국이 너무 불쌍합니다.

노동개혁이 그토록 중요한 개혁이라면 노동개혁의 결실을 맺는데 올인해야지, 왜 여야 대립전선을 교과서 파동으로 넓히는지요. 전략 전술적인 측면에서도 바람직스럽지 않습니다. 노동개혁도 버거운데 역사교과서 문제와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의 공산주의자 발언까지 터져 예산안의 국회 통과가 제대로 될런지 의문이 듭니다.

크고 멀리 보십시오.

또 말이 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바꾸기를 할 수밖에 없고 결국 신뢰성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청나라 강희제 때 명재상이었던 장정옥이 즐겨 사용한 ‘만마디의 옳은 말이 한 번의 침묵만 못하다’는 萬言萬當不如一默(만언만당불여일묵)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지난 2일 청와대와 휴전을 선언해놓고 어찌하여 3일, 4일 계속 발언(우선추천제도 수용 가능 등)을 쏟아냅니까? 결국 그 발언이 당내 분란을 자초했지 않습니까?

정치부 기자들은 한결같이 김무성 대표님이 오픈프라이머리와 관련해 말을 바꿔다고 합니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로, 결국 우선추천제로 달라졌거든요. 대표님께서는 상황과 환경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하시겠죠. 그럴지라도 말을 바꾼 것은 바꾼 것입니다.

그러니 단호한 의지의 표현일지라도 너무 단정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신중치 못한 처사입니다. 당 안팎의 괜한 오해와 분란을 일으킵니다. 청와대와의 갈등도 그렇고, 지난 5일 서청원 최고위원과의 설전도 그렇습니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과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하는 것은 급수를 떨어뜨리는 행위로 비춰집니다. 현 수석과의 친소관계는 사적인 영역입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사진=윤창원 기자)
또한 당 내에는 ‘대표님의 오지랖이 너무 넓다’는 볼멘 소리가 상당합니다. 원내대표가 주관할 의원총회는 말할 것도 없고 원내대책회의에도 자주 참석해 방향을 정해버립니다. 당 대표 우위의 투톱 시스템인데도 완전한 우위를 점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유승민 전 원내대표나 원유철 현 원내대표가 정치 후배이지만 엄연한 원내대표들입니다. 때론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지나 않는지 반추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시경엔 ‘無踰我里 無折我樹杞(무유아리 무절아수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라도 자식이 성인이 되면 자식의 일에 지나치게 관여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최고위원 멤버들도 대표님이 독주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협의의 정치, 대화의 정치를 해줄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참모들과 결정해버리고 일이 벌어지고 난 뒤 언론을 통해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추석 연휴 때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덜컥 합의해버린 것입니다. 청와대와 친박계는 새누리당이 언제부터 김무성 당이 됐느냐는 비판을 합니다.

이와 함께 최고위원 회의 때 다른 최고위원의 발언이 마음에 안 든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다고 “그만해”(7월 2일 김태호 최고위원에게), “그만 합시다”(10월 5일 서청원 최고위원에게) 같은 극단적인 발언은 안하느니만 못합니다. 대표님도 사람인지라 화가 나실 테지만 그럴지라도 다른 최고위원들의 발언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소통의 정치입니다. 판단은 언론과 국민의 몫으로 남겨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뚜벅뚜벅 가십시오. 자주 꼬리 내리지 마시고…국민은 “청와대에 할 말은 하는 당 대표가 되겠다”는 사자후를 익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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