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오늘 뭐했지?]박태환 이전 최고 마린보이 지상준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남자 배영 200m 금메달 시상식 장면.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90년대 문화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토토가'는 길거리에 다시 90년대 음악이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90년대는 스포츠의 중흥기였습니다. 하이틴 잡지에 가수, 배우, 개그맨 등과 함께 스포츠 스타의 인기 순위가 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90년대 스포츠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90년대 문화가 시작된 1990년 오늘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수영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대부분이 박태환을 떠올리실 겁니다. 물론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은 조오련이 생각나기도 하시겠죠.

수영은 육상과 함께 올림픽,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많은 메달이 걸려있는 종목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수영은 세계적인 수준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아시아에서도 찬밥 신세였죠.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조오련이 첫 종합대회 금메달이었습니다. 이후 조오련은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까지 총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특히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과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5개를 휩쓴 최윤희 이후 박태환이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3관왕에 오르기까지 한국 수영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1개를 따기에도 급급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한국 수영의 자존심을 지켜낸 선수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지상준입니다. 1990년 9월25일. 그러니까 25년 전 오늘이 바로 지상준이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의 한국 수영 유일한 금메달을 딴 날입니다.

지상준은 아시안게임 전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고작 충북 금천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에 불과했지만, 1989년 처음 대표로 뽑힌 뒤 한국신기록만 20개 이상 썼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스포트라이트였습니다. 1989년 4월에는 한국 최초로 배영 100m 1분벽을 돌파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기대대로 남자 배영 200m에서 값진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스타트는 좋지 않았습니다. 130m 지점까지도 5위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막판 스퍼트가 무시무시했습니다. 70m가 남은 상황에서 추월을 시작했고, 마지막 턴을 했을 때는 3위로 올라섰죠. 결국 마지막 30m를 남기고 선두로 나섰고, 그대로 골인했습니다. 드라마 같은 역전극이었습니다.

일본 감독도 "수영 단거리에서 도저히 연출될 수 없는 환상적인 장면"이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죠.

무엇보다 침체기였던 한국 남자 수영을 살리는 금메달이었습니다.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조오련 이후 16년 만에 남자 수영에서 나온 금메달이었습니다.

당시 지상준의 기록은 2분03초59. 대회 신기록이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의 기록은 2분00초48보다 3초 가량 뒤졌는데요. 수영연맹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내다보고 지상준에게 집중투자를 결정하는 계기가 됩니다.

비록 지상준은 목표로 했던 올림픽에서는 성적을 못 냈지만, 박태환의 등장까지 한국 수영에 밑거름이 됐습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땄고, 1995년 후쿠오카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도 한국 수영 최초로 세계 규모 대회 정상에 서는 등 박태환 이전 최고의 수영 선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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