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혼·성적이라는 포장지 속에 가려진 혹사

김성근 감독.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핫'한 선수는 맷 하비(뉴욕 메츠)였다. 다름 아닌 180이닝 투구 제한 때문이었다.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와 주치의 제임스 앤드류스 박사가 하비의 어깨를 보호하기 위해 내놓은 방안이다. 문제는 이미 166⅓이닝을 던진 하비의 포스트시즌 등판 여부였다. 당연히 보라스는 "안 된다"며 펄펄 뛰었고, 하비 역시 말을 아꼈다. 문제가 커지자 하비가 직접 나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등판할 것"이라고 말해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이처럼 '혹사'라는 단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민감한 이야기다.

한화 김성근 감독은 9월 투수진의 보직 파괴를 선언했다. 에스밀 로저스와 미치 탈보트, 두 외국인 투수를 제외하면 선발과 중간, 마무리라는 보직을 따로 두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실제로 1일 KIA전에서 6이닝 2실점 승리 투수가 된 안영명은 사흘 쉬고 5일 두산전에 구원 등판해 2이닝을 던졌다. 2일 KIA전에서 1⅓이닝 4실점으로 부진했던 배영수는 4일 넥센전에 등판했다. 송창식은 1~2일 KIA전과 3일 넥센전에 연투한 뒤 5일 두산전에서 선발로 나섰다.

물론 보직 파괴 선언 전에도 종종 있었던 일이다. 안영명은 1주일에 세 차례 선발로 나섰고, 송창식과 배영수, 송은범은 상황에 따라 선발과 불펜을 오갔다.

송창식.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문제는 선수의 몸 상태다. 김성근 감독은 8일 LG전에서 연장 끝에 패한 뒤 송창식을 9일 LG전 선발로 예고했다. 사흘 휴식 후 선발 등판이다. 송창식은 5일 두산전에서 117개의 공을 던졌다. 1~3일 3경기 연속 등판까지 포함하면 1주일 동안 177개의 공을 던졌다. 이런 연투는 포스트시즌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이다. 게다가 이미 송창식은 데뷔해인 2004년 140⅓이닝을 던진 뒤 최다 이닝(98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김성근 감독은 송창식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화에는 4일 등판 후 나흘을 쉰 탈보트라는 외국인 투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팀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이미 혹사 논란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권혁은 106이닝을 던졌다. 불펜 투수가 100이닝을 넘긴 것은 권혁이 24번째다. 박정진 역시 95⅔이닝을 소화했다. 둘 모두 통산 최다 이닝 투구다. 최근 경기력을 보면 분명 지쳤다. 로저스 역시 평균 120개의 공을 던지고 있다.

물론 혹사라는 것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게다가 한화가 5위로 와일드카드를 차지하면 조용히 묻힐 수 있는 논란이다. 내년에 보란 듯이 생생하게 던질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투혼과 성적이라는 포장지로 투수들의 혹사를 가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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