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이 '절치부심'한 영화 '사도'는 조금 다르다.
감독은 역사적 사실 이전에 '사람'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 속 영조는 한 사람의 아버지이고, 사도세자 역시 그렇다.
'사도'의 주축을 이루는 두 등장인물이 역사 속 인물보다, 생동감있는 캐릭터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왕의 자리에 있던 아버지와 세자의 자리에 있던 아들로 만나 인간 대 인간으로 갈등한다.
종종 영조로 분한 송강호가 왕답지 않은 이야기를 던질 때 별다른 위화감이 들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기까지 8일의 시간을 그린다. 이 시간 동안, 영조와 사도세자가 함께 생을 보낸 28년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반추된다. 결국 마지막에 과거와 현재는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한 지점에서 맞닥뜨린다.
그 안에서 혜경궁 홍씨, 어린 정조,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사도세자의 동생 화완옹주, 사도세자의 할머니 인원왕후, 첫 번째 중전인 정성왕후 등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히고 설킨다.
그 죽음은 비극의 절정이며 동시에 사도세자와 영조 사이에 맺힌 갈등이 흩어지는 순간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회한만이 남는다.
그런데 아들이 죽고 나서야 몰아닥치는 영조의 '부성애'는 다소 생경하다. 사도세자 생전, 아버지인 영조가 그를 '엄격'을 넘어 '가혹'하게 대해온 탓이다.
영화 내내 영조는 자신의 방식대로 사도세자를 위하지만 아들과 뜻이 맞지 않을 때는 남보다 더 차갑고 감정적으로 내친다. 변덕은 죽 끓듯 하고, 쓸데없는 트집을 잡는 것은 물론 사도세자가 상처받을 언행만 골라서 한다. 자식을 향한 기대를 배신당한 부모의 행동이라기에는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원인은 바로 '군주'인 영조가 갖고 있는 태생적 콤플렉스에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조는 끝내 사도세자와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다. 영화는 이 콤플렉스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고, '부성애'라는 본능적 감정도 여기에 가려진다. 과연 군주가 가진 콤플렉스가 한 인간의 부성애를 능가할 정도인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뒤틀린 부성애와 콤플렉스의 희생양처럼 다가온다. 영조가 그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자신의 일부나 다름 없었던 사도세자를 죽였다는 사실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본질만 놓고 보면 영조의 대사처럼 이것은 '나랏일이 아닌 집안일'이다. 왕과 세자의 권력다툼이 아닌,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이라는 이야기다. 현대에서도 이런 일은 끊임없이 발생한다.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자식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함께 살아간다. 영조와 사도세자처럼 극단적 죽음으로 갈등을 귀결짓지는 않는다.
두 사람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한 '사도'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비극적 애증에 속시원히 답을 주지는 못한다.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기 직전까지 치닫는 부자갈등. 역사적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그 본질을 꿰뚫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조는 세손이었던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는다. 열심히 공부해 언제나 자신의 운명을 쥔 할아버지 영조의 기대에 부응한다. 영조와 사도세자처럼 이들 부자 또한 분명히 다르다.
아버지 몫까지 짐을 짊어진 정조를 보면 군주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사도세자는 나약한 인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강하다. 살면서 자신을 속이지 않았고, 그 기질을 애써 감추려하지 않았기에.
송강호의 노련한 연기는 역대 가장 인간적인 영조를 재연하고, 유아인은 패기 넘치는 예비 군주에서 점점 광기에 물들어 가는 사도세자로 분해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살 길을 도모하는 문근영, 전해진, 김해숙, 진지희 등 궁궐 여인들의 연기는 '사도'에 매력적인 긴장감을 더한다. 오는 1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