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전문대에 진학했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다. 땀 흘리며 학교를 다닌다는 것. 그 것은 되레 자극제가 됐다. 졸업 때 학부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한차례의 총장상과 두차례의 재단이사장상도 그를 돋보이게 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아무리 찾아봐도 마땅한 일자리는 없었다. 대학 친구들은 의료정보학이라는 전공과 무관한 곳에 계약직, 파견직으로 취직했다. 전공을 살린다쳐도 자살률 높기로 유명한 제약회사의 영업사업원이 고작이었다. 월급 150만원도 못 받으며 일하다 30대쯤엔 명예퇴직이나 정리해고를 당할게 뻔한 곳들이었다.
그렇다고 더 좋은 일자리는 전문대 졸업장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4년제에 편입했다. 2년 더 돈을 벌어 공부를 하자니 앞이 깜깜했지만 이마에 찍힌 전문대졸업생이라는 낙인을 가릴 수만 있다면 뭐든 감수할 자신이 있었다.
대학시절 내내 그는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돈을 버는 일터기도 했다. 지금도 학교에서 두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친구들은 그를 '노비'라고 부른다. 무식하게 일하지만 돈은 쥐꼬리만큼도 못 받는, 그러나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신세라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학교에 일이 없는 일요에는 부모님이 하시는 목욕탕 일을 돕는다. 카운터를 보다가 샤워하고 싶으면 목욕탕에 들어가 몸 대신 바닥을 닦는다. 이렇게 모은 돈이 요새는 꼬박꼬박 학원으로 들어간다. 취업 준비에 영어와 국어, 국사관련 자격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먹고 자질 못해서일까. 그는 최근 봉와직염을 앓았다. 군대에나 있는 줄 알았던 이 병을 사회에서, 그것도 대학을 다니면서 얻게 될지는 몰랐다. 그는 지금도 학원가에서 3천원짜리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다. 최근 '컵밥'을 노량진의 '문화'로 포장한 신문 기사를 보고 그는 분개했다고 한다.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꾸역꾸역 넣어야하는, 수중에 가진 돈이 없는 이들의 슬픈 한 끼 식사를 어떻게 한가로이 '문화'로 접근할 수 있냐는 거다.
편입학이후 신문방송학(전공)과 정치학(복수전공)에 눈을 뜨면서 사회를 바꾸는 일을 희망직업으로 꼽기 시작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국회 보좌업무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해 여름에도 두 달간 모 국회의원의 인턴비서로 일하기도 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의료법 개정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편입학과 복수전공 덕에 3개 학과에 대한 지식을 갖춘 것이 도움이 됐다. 갈수록 전문대졸업자라는 주홍글씨에 대해서도 용기가 생기고 있음을 느낀다. 그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스스로에 대한 고백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솔직한 고백을 할 때 내려놓을 과거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거기서 앞을 향해 달려갈 추진력도 얻는 것 같구요"
14번째 취준일기 주인공, 이상윤씨를 목소리로 만나보자.
[편집자의 글] 이 기사는 청년실업자 100만 시대를 맞아 CBS노컷뉴스가 우리시대 청년 구직자들의 속내를 그들의 '음성'으로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마련된 연속기획입니다. 취업준비생들의 애환을 나누고 그들을 위로하고 또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인 기업들에게도 서류와 짧은 면접으로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취준생의 면면을 보다 세밀하게 판단할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의도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 취준생들에게 1개월 간 각자의 스마트폰에 자신의 목소리로 취업준비 활동을 매일 일기처럼 음성으로 녹음하게 했습니다. 물론 취준생들에게는 소정의 사례비가 지급됩니다. 제작진에 전송돼 온 한달치 음성파일은 편집 과정을 거쳐 미니 다큐로 가공돼 CBS라디오 뉴스에서 방송되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음성 파일이 탑재된 텍스트 기사 형태로 편집돼 이 기사처럼 매주 한 편씩 소개되고 있습니다.
▶취준일기 코너 가기 클릭
▶취준일기 참여 신청 twinpine@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