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정부는 전두환 정부보다 좀 나을까요?"…해직기자의 편지

이용마 MBC 해직기자, 방송의 날 맞아 대통령에게 공개 편지[전문]

-. 박 대통령의 말 믿고 파업 먼저 풀었지만 철저한 배신으로 응답
-. 단 한 차례의 배신으로 수천, 수만 언론인의 운명 한 순간에 바꾸어
-.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방송 정상화 시도할 수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포기
-. 박 대통령,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여

이용마 MBC 해직기자.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제52회 방송의 날(3일)을 맞아 박근혜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이 기자는 2012년 당시 노조 간부로서 '방송의 공정성 보장과 김재철 (당시)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에 참여, 파업 도중 해고 징계를 당했다.

그는 "2012년 MBC, KBS 등 방송사 연대파업은 언론의 자유라는 대의명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며, 당시 파업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도 '공감하는 바가 많다'는 뜻을 MBC 노동조합에 전달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노동조합이 먼저 파업을 풀면 김재철 당시 사장의 퇴임을 비롯해 언론 문제를 순리대로 해결할 것을 약속"해 파업을 풀었지만,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박 대통령은 철저한 배신으로 응답했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최근 박 대통령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를 논할 때 어찌할 바를 몰랐다"며 "단 한 차례의 배신으로 수천, 수만 언론인들의 운명을 한 순간에 바꾸어놓은 분이 자신의 배신자에 대해서는 무서울 정도로 응징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고 했다.

또 "박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방송의 정상화를 시도할 수 있었지만 포기하고,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대통령 자신이나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가 거의 봉쇄되어 있기 때문이겠지요"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즐기는 기간은 언론인들에게는 생지옥이다"며 "이제 방송사에서 속칭 '잘 나가려면' 정치권력만 바라보면 된다.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유지하고 싶으면 한직에서 정신수양을 하거나 가족들과의 여가를 늘리면 된다"고 꼬집었다.

이 기자는 끝으로 "대한민국에서 언론으로서 방송사는 소멸되었다. 오락매체만 남은 거다. 언론의 죽음은 곧 민주주의의 죽음을 의미한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은 사라지고, 소수가 다수를 억누르며 이끌어가는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를 뜻한다"고 지적한 뒤 "박근혜 정부는 전두환 정부보다 좀 나을까요? 대통령의 답변을 기대한다"며 편지의 끝을 맺었다.

다음은 편지 전문.

박근혜 대통령께


오늘은 방송의 날입니다. 방송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중대한 역할을 되새기자는 날이지요. 그런데 최근 상황은 방송의 날을 마냥 즐기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방송인들의 사기는 최악이고 방송사 내부의 인적 갈등은 폭발 직전입니다. 방송에 대한 신뢰도 급전직하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2012년 방송사 연대파업 이후 수습을 잘 못했기 때문입니다.

2012년 방송사 연대파업은 대사건이었습니다. MBC가 170일, KBS가 100일 가까운 기간 동안 파업을 단행했습니다. 백면서생의 언론인들이 사상 유례가 없는 장기 파업을 한 것은 언론의 자유라는 대의명분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언론장악이 노골화되면서 언론인들의 인내심이 그 한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당시 파업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많다”는 뜻을 MBC 노동조합에 전달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파업사태가 해고라는 “징계까지 간 것은 안타깝다”고 공개적인 발언을 하며, 노동조합이 먼저 파업을 풀면 김재철 당시 사장의 퇴임을 비롯해 언론 문제를 순리대로 해결할 것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상돈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최근 다시 한 번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MBC 노동조합은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박 대통령의 말을 믿고 파업을 먼저 풀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철저한 배신으로 응답했습니다. 김무성 당시 박근혜 후보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의 전화로 김재철 전 사장의 해임안은 부결되었고, MBC는 승자들의 전리품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파업참가자들을 현업에서 내쫓고 파업불참자들을 우대하는 인사조치가 지속적으로 단행되면서, 조직은 분열되고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파업 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경영진이 아직도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일 겁니다. 그 결과 방송사의 신뢰도와 시청률은 창사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요즘 현실입니다.

최근 박 대통령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를 논할 때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단 한 차례의 배신으로 수천, 수만 언론인들의 운명을 한 순간에 바꾸어놓은 분이 자신의 배신자에 대해서는 무서울 정도로 응징한다는 사실에 경악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방송사의 파행을 막을 기회를 누차 가졌습니다. 말로는 공영방송이지만, 청와대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입니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방송의 정상화를 시도할 수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포기했습니다.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 자신이나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가 거의 봉쇄되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박근혜 대통령이 즐기는 기간은 언론인들에게는 생지옥입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라는 언론인의 사명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더 이상 국민들을 쳐다볼 필요도 없습니다. 굳이 진실을 말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제 방송사에서 속칭 “잘 나가려면” 정치권력만 바라보면 됩니다.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유지하고 싶으면 한직에서 정신수양을 하거나 가족들과의 여가를 늘리면 됩니다. 해직자들과 큰 차이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언론으로서 방송사는 소멸되었습니다. 오락매체만 남은 겁니다. 언론의 죽음은 곧 민주주의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은 사라지고, 소수가 다수를 억누르며 이끌어가는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를 뜻합니다. 70년대 박정희 정부와 80년대 전두환 정부를 거치며 익히 보아온 현실입니다.

이 암흑기가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80년대 해직자들이 복직되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습니다. 제가 해고된 지도 벌써 3년 반이 되었으니, 이제 절반을 채웠습니다. 그동안 수차례의 법원 판결에서도 저희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할 정도로 민주주의가 진전되었으니 박근혜 정부는 전두환 정부보다 좀 나을까요? 대통령의 답변을 기대합니다.

2015. 9. 3
문화방송 해직기자 이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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