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루'족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리턴' + '캥거루족'이 '리터루족'이다. 어감으로는 귀엽지만 내용은 심각하다. 결혼한 자녀가 전세값 폭등에 버티기가 힘들어 시댁이든 처가든 부모 집으로 되들어와 산다는 내용이다. 지금처럼 전세값이 폭등하면 젊은 부부로서는 열심히 벌어 은행대출 이자 갚다가 중년에 이를 게 뻔하다. 대부분의 젊은 부부들이 부모의 지원 없이는 전셋집 마련과 자녀 교육이 불가능한 '하우스푸어 & 에듀푸어'로 전락하고 있는 중이다. 국가와 사회가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 못하니 개별적으로 마련해 낸 대책이 부모에게 돌아가는 '리터루'족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대학 졸업시키는 것도 힘들었고 결혼비용 대는 것도 벅찼다. 결혼한 자녀가 되돌아온다면 자신의 노후보장을 위해 마련한 비상금을 깎아내 보태주어야 한다. 결국 부모도 세상살이가 힘겨워지면 푸어로 전락한다. 이를 '캥거루 푸어'라 불러야할까? 전세와 월세라는 주택문제가 주택문제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빈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리터루족 현상인 셈이다.
젊은 부부가 무거운 빚을 짊어지는 것도 안타깝지만 더 큰 불행은 가계 빚은 가족불화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2012년 대법원 사법연감을 보면 경제 문제로 인한 이혼 청구는 2011년에 1만 4천 건, 전체 이혼 소송의 12.4%를 차지한다. 합의나 중재로 끝나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걸 고려하면 경제문제로 인한 이혼은 훨씬 더 많다고 봐야 한다. 가족의 해체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게 경제적 궁핍함이고 상당 부분은 부채에 연계되어 있을 것이다.
일본은 이미 대가족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다. 일본 사회가 대가족을 재조명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 무렵으로 이때 이미 대가족용 연립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사는 게 벅찬 젊은 부부와 손주를 곁에 두고 싶은데 만날 기회가 적은 노부모의 요구가 맞아 떨어지며 생긴 트렌드였다. 땅값과 건축비가 비싼 일본의 형편에 맞는 방식이다. 한 지붕 밑에 각자 내 집이 있고 합치면 우리의 집이다. 프라이버시도 보장받고 핵가족의 문제점도 해결하는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렇게 30년이 지난 지금은 2.5세대 주택이라는 트렌드가 되어 있다. 2.5세대 주택은 부모와 그들의 자녀 부부, 그들의 아이가 모여 살거나 형제나 친척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주거 및 주택형태이다. 2.5세대 주택은 독신과 이혼율 증가 추세와도 맞아 떨어진다. 독신자녀와 돌싱자녀들을 품기에 적절한 형태인 것. 맨션의 아래위층으로 살면서 서로 의지하는 형태도 늘고 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직장의 구조조정은 상시적이고 세금과 사회 보험료도 계속 오르는 상태에서 수입은 늘지 않으니 새로운 가족형태와 이에 맞춘 주거형태는 거스르기 어려운 대세이다.
이런 가족과 주거형태의 변화는 경기침체 뿐 아니라 대지진, 테러 등의 사회불안으로부터도 영향을 받는다. 일본은 대지진 이후 대가족 형태가 늘고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대가족 형태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도 이런 가족 변화에 발을 맞추고 있다. 여러 세대가 함께 사니 바비큐 용품이나 어른 아이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캠프용품의 인기가 높아진다. 여행도 대가족이 함께 떠나는 경우가 늘어나니 호텔 객실도 커넥팅 룸(connecting room)이 늘어나고 있다. 온 가족이 한 곳에 머물다 흩어지다 할 수 있는 휴양공간이 필요해 진 것이다.
텔레비전도 화면 크기가 다시 커지고, 음식을 조금씩 소포장해 팔던 것이 포장 용량이 커지고, 술도 여러 세대가 함께 나눌 수 있는 부드러운 술의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
물론 모여 살다보면 좋은 점도 있지만 갈등도 있다. 갈등을 줄이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필수. 대가족이나 리터루족 형태가 부모를 모시겠다는 진정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 불안으로 불가피하게 합쳐진 것이니 갈등의 소지는 많다. 우선 시작 전 제대로 된 동의와 합의를 거치되 독립 준비는 꾸준히 해나가야 하고 생활비도 적절히 분담해야 한다. 갈등을 불러일으킬 문제는 미리 논의해 규칙을 정하고 피차 가족을 이끄는 성인인 만큼 예의를 잘 지켜야 한다.
◇ 정부는 기업 이윤보다 가족의 행복을 지켜야
정부 차원에서도 건설경기를 살리겠다고 공급자 위주로 대형아파트에 치중하지 말고 사회의 트렌드 변화를 잘 살펴 주택정책이나 기타 정책을 개선할 시기가 왔다. 미국이나 일본에는 '페어런츠 하우스 parents house'라는 주거 시설이 있다.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 부모 세대가 사는 실버 전용 동을 따로 지어 자녀 세대가 거주할 집과 함께 분양하는 방식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 요양원을 지어 묶어서 분양하고 운영하는 격이다. 실버타운에 별도로 노부모를 모시는 것보다 페어런츠 하우스는 가족의 유대를 이어가고 비용도 절감되는 장점이 있다.
새로운 다양한 형태의 주택정책이 나와야 한다. 미분양이 쌓이는 중대형 아파트를 세대 분리형 아파트로 바꿔 활로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의 주택정책은 끈질기게(?) 공급자 중심이어서 대형건설사들이 이윤을 남기는 쪽으로 단기적인 방책만 꺼내놓는데 시장의 수요와 미래의 시장에 맞춘 개선이 필요하다. 가족은 중요한 국가적.사회적 자원이다. 가족들이 힘을 합치고 합리적 가게를 꾸려가도록 필요한 것을 정책으로 지원해야지 기업의 요구에 편중돼 가계를 희생시키는 정책은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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